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 킹콩

영화 '킹콩'에는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온갖 괴물들이 등장한다. 무시무시한 공룡, 사람을 통째로 삼키는 강장동물, 한번 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징그러운 벌레들, 그리고 거대한 킹콩이다.

함께 영화를 보던 다섯 살 난 아들은 킹콩이 티라노사우러스를 쓰러뜨리자, '킹콩 나빠' 라며 울음을 터트린다. 세상에서 공룡이 가장 세다고 여기던 녀석에게 킹콩은 위협적인 존재였나보다. 아이들은 공룡같은 사나운 동물 놀이를 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한다. 때론 공룡의 강함과 동일시하여 으스대기도 하며, 내면의 공격성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마음을 이드(Id), 자아(ego), 및 초자아(superego)라고 설명하였다. 이중 이드는 본능적인 욕망과 욕구를 말하는 것으로, 맛난 것을 먹고자 하는 식탐, 초미니 스커트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성적 충동, 누군가를 두들겨 패거나 죽이고 싶은 공격심, 미쳐버릴 듯한 분노 폭발 등이다. 이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참을성이 없고,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며 쾌락원칙에 따라 살아간다.

프로이드는 세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토'에 나오는 반수인 '캘리반'이 이드와 가장 닮은 모습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얼굴과 몸에 짐승의 비늘과 털이 덮여있고 흉측한 표정을 지닌, 반은 짐승이요 반은 사람인 캘리반이 바로 인간의 이드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누구나 마음 속에 길들이기 힘든 짐승을 한 마리씩 안고 살고 있다. 킹콩도 캘리반처럼 다를 바 없는 이드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여인 앤을 사랑한 킹콩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앤의 사랑을 확인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태생적 한계로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을 던져버림으로써 앤과 소울 메이트로 남겠다는 소망이다. 영화 '킹콩'이 심금을 울리는 것은 멈출 수 없는 야수의 으르렁거림을 인간다움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때론 짐승보다 못한 인간에게 많은 깨달음을 선사한다.

김성미 마음과 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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