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예행 연습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선배를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됐다.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선배가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퇴하고 나니 모든게 다 줄더군. 용돈도 줄고, 만날 사람도 줄고, 키마저도 줄고…. 다만 한 가지는 늘어나더군. 무한정 늘어나는 시간. 하지만 그건 멈춰버린 시간과도 같애. 죽은 시간처럼 말야."

얼마전 별 이유도 없이 허리를 삐끗했다. 며칠동안은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채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야만 했다. 왜 많은 노인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어야 하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게다가 몇달째 계속되는 견비통 탓에 오른쪽 팔은 반 장애인 수준이 됐다. 정도 차이일뿐 누구나 다 거치는 통과의례라 해도 '나'만은 예외라 여겼더니 순 착각이었다. 하긴 제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기계도 수십년간 매일 사용하면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마련인데 사람 몸인들 다를까.

이런 소소한 변화들을 겪으면서 우리 몸 역시 대자연의 일부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봄의 새 순이 여름에 무성한 녹음을 이루고 가을바람에 단풍들었다가 마침내 그 모태인 땅으로 회귀하듯 우리도 서서히 몸의 사계절을 거쳐가고 있음에랴.

행복한 노후를 위해선 40,50대때 부터 미리 '예행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미국 등 고령사회에서의 움직임이라고 한다. 특히 대기업 등의 고위직에 있는 남성일수록 연습을 안 할 경우 퇴직후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을 겪기 쉽다 한다. 정서적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보다 업무와 지위로 인한 사회적 관계를 많이 맺는 남성들은 일자리를 떠나는 순간부터 거의 모든 대인관계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행 연습을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은 본게임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 섭섭해 하지 않기 위한 연습, 마음속 뾰족한 돌기를 버리는 연습, '내것'을 나누는 연습, 홀로 서는 연습…. 그러고보니 예행연습할 게 꽤 많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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