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적잖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살고 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생각을 갖고 닮은 꼴의 삶을 사는, 이름이 똑같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게임업체의 선두 주자인 KOG㈜ 이종원 대표이사와 동아백화점 이종원 수성점장의 만남은 단순히 이름이 같다는 것을 넘어선, 다소 과장하자면 '필연성'마저 느껴진다.
이 대표는 게임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에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그랜드 체이스'라는 온라인 게임으로 유명한 KOG는 올해 매출액 1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둔 지역의 대표 벤처기업. 오히려 대구경북보다 서울이나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인사이자 업체다. 이 점장은 화성산업㈜동아백화점 이인중 회장의 외동 아들. 현재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3세 경영인이다.
얼핏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실제 인터뷰 자리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온 이 점장과 달리 이 대표는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나이도 8살 차이가 난다. 이 대표는 1964년생, 이 점장은 1972년생. 하지만 차이점은 이것이 전부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공통점이 많다. 우선 같은 대학 출신이다. 이 대표는 경북대 수학과, 이 점장은 경북대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둘 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아울러 두 명 모두 기업 경영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
동시에 친형제가 부럽지 않을만큼 절친한 사이다. 이들의 만남은 벌써 3년째로 접어든다. 대구테크노파크에서 운영하는 'CEO 아카데미'를 통해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졌고, 이후 매주 한두번 이상 전화로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 원래 '이종원 모임'(물론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의 멤버는 3명이다. 대구문화포럼 회장을 맡고 있는 이종원 변호사를 포함해서. 하지만 최근 이 변호사가 서울을 오가며 워낙 바쁜 탓에 '이종원 3인방'의 회동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유학을 가서 경영학 석사를 받고 왔는데 현실과의 괴리감이 적지 않더군요. 그 때마다 종원이 형(이 대표를 칭함)이 진심어린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 점장의 말을 듣고 이 대표는 한 술 더 뜬다. "종원이가 소박하고 검소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얼마 전 조금 더 좋은 차로 바꾸기는 했지만 최근까지 중고 소형차를 타고 다니더군요. 게다가 행여 귀에 거슬릴 수도 있는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좋았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항상 배우려는 자세는 오히려 제가 본받을 정도입니다."
이 대표는 독서광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승용차가 신호 대기 중일 때도 책을 펼쳐들 정도다. 덕분에 일주일에 평균 한두 권씩 독파해 낸다. 가끔 감명깊게 읽은 책을 이 점장에게 권해주기도 한다. 개혁을 주제로 한 일본소설 '불씨'도 그런 경우. "탁월한 추천이었습니다. 왜 그 책을 읽으라고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지만 추천만 할 뿐 결코 책을 선물하지는 않더군요." '짠돌이'라는 이 점장의 장난기 어린 힐책에 이 대표는 "다 너한테 배운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연스레 주제는 대구 경제로 넘어갔다. 지역업계 최초로 '온-오프라인 공동 마케팅'을 펼쳤던 두 사람은 더 이상 지역 정서에 의존해서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3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은 공격적인 마케팅과 인재 양성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민감한 부분에 대한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결코 상대 의견을 묵살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허물없는 사이지만 상대에 대한 예를 갖출 줄 알았다. 바로 이것이 8살 차이를 넘어선 우정을 가능케 한 이유가 아닐까?
"분명 몇 년 안에 지역 경제는 상당한 위기에 봉착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준비하고, 지역 기업들간에 윈-윈 전략을 택한다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동아백화점과 KOG도 조만간 획기적인 공동 마케팅을 선보이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 대표가 당찬 포부를 밝히자 이 점장도 믿음 어린 눈빛으로 활짝 웃어보였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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