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감동의 그라운드) 아트사커의 부활

'아트 사커'의 예리한 창이 다시 광채를 내고 있다. 세계 최강의 팀으로 꼽히는 브라질 조차도 왕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지네딘 지단의 완숙한 노련함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투 보란치(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철벽같은 중원 장악. 그 앞 포지션에서 공격적 창의성으로 무장한 지단의 현란한 경기운영. 좌·우 윙들의 빠른 돌파와 탁월한 중앙 공격수의 마무리. 4-2-3-1, 혹은 4-3-2-1 전술에 기초한 아트 사커가 브라질전에서 완벽하게 부활했음을 보여줬다. 오래간만에 보는 지단의 '마르세유 룰렛', 앙리의 스피드, 말루다-리베리의 2선 침투 등은 분명 예술 축구, 그 자체였다.

브라질 팬인 나의 입장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시종 현란하고 강인한 플레이를 펼치는 프랑스 선수들의 볼 터치 하나하나가 가슴을 미어지게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프랑스 축구만의 강인한 팀 컬러를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만족스런 경기였다. 그리고 브라질 축구 팬이라는 차원을 넘어 축구팬이라는 중립적 입장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한 프랑스 선수들에게 우선 잘싸웠다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비록 패했지만 프랑스 못지않은 경기력을 선보인 브라질 선수들에게도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제 세계인의 관심은 지단의 발끝으로 모아지고 있다. 지단은 조별리그까지만 해도 자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들로부터 '지네딘 지단으로 인해 팀이 망해가고 있다.'는 냉혹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국내 언론은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 대표팀을 '늙은 수탉'에 비유하는 등 그를 은근히 비하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타는 강팀을 상대로, 특히 큰 무대의 토너먼트에서 진정한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라는 스포츠계의 기초적인 법칙(?)을 그대로 증명시키듯, 지단은 그야말로 '본좌'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볼 컨트롤의 황제란 닉네임에 어울리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볼터치, 상대 선수들의 머리 위에서 마치 경기의 전황을 모두 꿰뚫어 보는 듯한 탁월한 시야와 경기운영 능력, 고감도의 패싱력 등등. 지네딘 지단이 미드필드 중앙에서 제 역할을 소화해내면서 그간 문제로 지적되었던 프랑스의 조직력도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분위기다. 스페인, 브라질전을 거치면서 지단이 조율하는 프랑스의 조직력은 이미 절정으로 올라섰다. 이는 프랑스가 남은 토너먼트(준결승과 결승)에서도 선전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대표팀은 어찌보면 황금기의 마지막 세대다. 특히 아트 사커의 지주였던 지단이 활약하는 마지막 세대인 것이다. 미셀 플라티니를 잇는, 아니 어쩌면 능가할지도 모르는 프랑스 최고의 축구 영웅 지단. 그가 벌이는 마지막 월드컵 대회. 과연 어떤 결과로서 대미를 장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열(대학생· '한 눈에 축구의 전략을 읽는다' 저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