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세금, 잘 쓰면 두 배도 내지

어느 시대나 통치자는 백성들이 세금을 덜 내려 들거나 깎아 달라고 나서면 싫어하게 마련이다.

러시아의 개혁적 황제로 알려졌던 표트르 대제도 개혁 마인드와는 달리 세금 문제만은 여느 통치자와 다를 바 없는 별난 일화를 남겼다.

그는 어느 날 농민들이 흉작을 이유로 면세를 청원해 오자 화를 내며 "성가시도다, 내 ××이나 떼 가라"며 쫓아냈다.

그 뒤 농노(農奴)를 해방시켰을 만큼 어느 황제보다 농민을 사랑했던 캐서린 2세 여왕 역시도 농민들이 면세를 요구해 왔을 때 표트르 대제의 일화를 핑계 대면서 "짐에게는 떼어 갈 '그것'조차 없노라"며 내쳤다고 한다.

통치자의 세금 징수 의지가 강할수록 측근 부하들은 눈치껏 무리하게 세금을 올리거나 괴팍한 징세 제도를 만들어 낸다. 권력의 속성이다.

표트르 대제 때도 세금 긁어내는 아이디어를 전문으로 짜내는 '이득발안자(利得發案者)란 '알바꾼들'까지 생겨나 황제의 비위와 코드를 맞추었다.

실례로 일개 노예 출신으로 고위 관료까지 승진한 쿨바토프 같은 인물은 빨래하는 데는 '세탁세'를 붙이고 모자 쓰는 데는 '모자세' 심지어 턱수염에도 '수염세'를 붙이는 기상천외의 징세안을 짜낸 덕분에 출세한 이득발안자 출신이었다. 대통령이 강남 부유층을 탐탁잖게 여기니까 밑에서 '세금 폭탄' 운운하며 재산세 인상안을 내놓은 지금의 우리 사정과 닮아 있다.

우리의 조선왕조 때 역시 세금에 관한 한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측근 경제팀과 조선왕조의 호조판서팀의 징세와 나라살림 관리에서는 큰 차이점이 있다.

조선왕조 시절 3대에 걸쳐 호조판서를 낸 이세좌 문중의 경우 워낙 국고 살림을 아끼고 긴축재정을 펴는 통에 '사람 눈도 둘이니까 한 개로 줄이자고 할 사람'이란 불평을 샀을 정도였다.

턱수염세, 빨래세금 만드는 식의 쿨바토프형 세금 폭탄 연구가 아니라 합리적 공평과세하되 백성 눈치 임금 눈치 따라 거둬야 할 세금을 늘렸다 줄였다 하지 않는 소신이 있었던 것이다.

왕조 시대의 그러한 조세 정신이 바로 지방선거 한 판 지고 나자 금세 세금 되깎아 주겠다고 말 바꾸는 노 정권의 원칙 없는 조세 정신과 다른 점인 것이다.

솔직히 지방선거 참패와 민심 이반이 재산세 때문이었을까? 절대 아니다.

3억 미만 아파트 경우 새로 더 깎아 주겠다고 생색낸 삭감액은 고작 6천~1만 원 안팎이다. 연간 단돈 몇천 원 안팎의 세금 땜에 정권을 미워했다 예뻐했다 할 국민은 없다. 선거 패배의 더 큰 원인은 징세 자체보다는 거둔 세금 쓰는 방식과 태도가 마뜩찮았기 때문이다. 이 정권 들어 늘어난 국가 채무는 200조가 넘어섰다. 지난해엔 잘못 거둔 세금도 1조 1천억 원이 넘었다. 갖가지 위원회에다 대선 공신'운동권 동지를 위한 자리 늘리기에다 프로답지 못한 국정 운영으로 새 버린 세금, 납북 소년 잡아다가 '자다 깨 보니 북한이더라' 거짓말시키는 정권에 인도적 기준 이상으로 퍼주는 세금. 그런 식의 세금 낭비를 본 국민이 단돈 몇천 원의 재산세조차 이 정권에 바치기엔 아깝다는 생각으로 화가 나 있는 것이다.

노 정권은 이제부터 미운 녀석 세금 물리는 연구보다 거둘 건 확실히 거두되 눈도 한 개로 줄이자고 할까 봐 겁난다고 할 만큼 나라 살림을 챙긴 왕조 시대의 호조 정신부터 깨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 상황 따라 징세 원칙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세금을 허투루 쓴다면 이 정권은 그들이 싫어하는 보수 계층과 속으론 파업이 싫은 순수한 근로자, 기업, 새마을 정신으로 땀 흘려 희생해 온 농어민 계층들이 쌓아 이룩해 온 경제 성장의 저축을 계속 까먹기만 할 수밖에 없다. 세금 제대로 쓸 데 쓰면서 경제를 살려 보라. 재산세쯤 두 배 더 때려도 웃으며 낼 것이다. 그게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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