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즉결심판(이하 즉심) 법정. 택시요금을 안줬다가 이 곳에 나온 채모(40) 씨와 술을 먹고 다투다 상대방을 고의로 흠집내는 신고를 했다가 무고혐의로 불려나온 김모(47) 씨. 단 두 명이 법정에 섰다.
판사 및 법원 직원 각 한 명, 경찰관 한 명이 자리를 더 지키고 있었다. 100평 가까이 됨직한 법정에 5명만 자리를 지켜 썰렁한 기운 마저 감돌았다. 벌금형을 받은 이들의 재판은 10분도 안돼 싱겁게 끝났다.
"매일 아침마다 25인승 버스 2대를 동원해 이곳에 왔어요. 그 때는 엄청 많았지. 즉심 넘기는 일이 경찰의 중요 업무 중 하나였으니까."
20년전 경찰서 방범지도계에서 즉심 업무를 봤던 퇴직 경찰관 이문섭(58) 씨는 요즘 즉결 법정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즉결심판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웬만한 범법행위는 '돈 내는'것으로 벌을 대신하고 있는 탓이다. 일부에서는 '인권의 신장'이라고 하는 쪽도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법정에서의 따끔한 질책이 사라지면서 법질서를 무시하는 현상이 심화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구시내 각 경찰서가 즉심을 청구한 건수는 2001년 5천6백여 건이었으나, 2003년엔 1천7백여 건으로 2년 사이에 70%가 줄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감소세는 올 들어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즉심에 회부되는 사람이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잘못 하더라도 벌금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경범죄 처벌법'을 위반할 경우 반드시 즉심에 서게했지만 2002년부터는 즉심재판에 나오지 않아도 벌금만 내면 되도록 바뀌었다. 1998년 경범 유치장이 없어진 것도 한몫했다. 과거엔 경범죄 처벌법을 어기면 일단 유치장에 수감됐다가 다음날 아침, 일괄적으로 즉심에 회부됐다.
이문섭 씨는 "과거엔 법 집행이 굉장히 엄했기 때문에 자전거에 등을 달지 않아도 즉심에 회부될 정도였다. 20년전엔 수성못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즉심에 넘겼는데, 경찰차가 모자라 시내버스를 동원해 즉심에 실어날랐다."고 회고했다. 그는 예전 우리나라의 법이 너무 엄해 즉심이 남발된 사례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즉심을 완전 폐지하고 벌금형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경찰 생활질서과 관계자는 "인권보호도 좋지만 벌금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경찰관이 출동해도 함부로 난동을 부리는 등 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심해지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한덕수 탄핵소추안 항의하는 與, 미소짓는 이재명…"역사적 한 장면"
불공정 자백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 자폭? [석민의News픽]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제2의 IMF 우려"
계엄 당일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복면 씌워 벙커로"
무릎 꿇은 이재명, 유가족 만나 "할 수 있는 최선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