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 깜박이던 산골 마을에 전깃불이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훤하게 드러난 것은 마을 사람들의 남루한 생활 모습이었습니다. 방안의 낡은 가구에 새까맣게 붙은 파리똥이며, 부엌의 흙벽에 덕지덕지 붙은 그을음이며, 색이 바랜 옷자락이었으며, 구멍 난 양말 밖으로 삐죽이 내민 발가락이었으며, 노인네들의 주름살 깊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밝은 빛과 함께 동네 구석구석을 점령해온 침략군은 확성기 소리였습니다. 이장집 사랑방 윗목에 방송 기기가 놓이고, 여기서 빠져나간 전선이 마을 중간 중간의 감나무 꼭대기와 지붕 위에 얹힌 확성기와 연결되면서 이 확성기는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쉬지 않고 시끄러운 소리-대부분은 유행가였다-를 토해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유독 이미자 노래를 좋아했던 이장님은 '헤일 수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꼭두새벽부터 마을 사람들의 새벽잠을 깨우고 나서는 '해에애당화 피고지이이는 서엄 마으으을…'로 건너갔다가, '아씨', '기러기 아빠', '연포 아가씨', '흑산도 아가씨'를 모두모두 불러 대동하고, 해질녘쯤이면 '황포 돛대'를 타고 '여자의 일생'으로 꺾고 넘어가는데, 잠시 노래가 끊기는 순간은, "애- 또 연락드립니다. 윗마을 화산아지매, 대구의 아들한테서 전화 왔네유. 빨랑 와 받아야 쓰겠구만이라우."라는 따위의 이장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뿐이었습니다.
오기택의 '추풍령'을 듣고 싶어도 오로지 이미자의 노래를 들어야 했고, 조용히 뜰 앞의 난초 잎 쓸고 가는 바람소리에 귀를 열어두고 싶어도 이미자의 노래를 들어야 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도 병석에 누운 할머니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행여 확성기를 꺼 달라거나 다른 노래를 섞어 달라는 청을 했다가는 신식 유행 문화에 뒤떨어진 무식쟁이로 몰렸습니다.
골목길에서도, 벼논에서도, 산비탈 고추밭에서도 '그리움은 가슴마다' 고이고 '울어라 열풍'이 쉬지 않고 불어대자 마을 사람들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엌에서 밥을 푸던 아낙네들이 주걱으로 장단을 맞추는가 하면, 들로 가던 아저씨들이 노래 가락에 정신이 팔려 경운기를 몰고 개울로 들어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동네 똥개들도 밤마다 뒷산 밤나무 숲에 모여 이미자 모창대회를 열었답니다.
토고전에서 스위스전까지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온 국민들이 빨간 티셔츠 차림으로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의 허공으로 둥둥 내몰리던 풍경을 되돌아보면, 자꾸만 이 산골 마을의 옛 풍경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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