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가 영화감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린쿼터라는 보호막 덕분입니다. 또 그것 때문에 해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알리는 데 힘을 얻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이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 1인시위의 마지막 146번째(스크린쿼터 축소 이전의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 주자로 나섰다. 2월4일부터 시작된 영화인들의 1인시위는 이날로 146번째를 맞았다. 실질적으로는 150일이 흘렀으나 4일간은 집회로 1인시위를 하지 않았고, 하루 두 명씩 나선 날도 있어 참여한 주자 역시 정확하게는 172명이었다.
3일 오후 6시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임 감독은 "참여정부가 반쪽 낸 우리 영화의 미래, 스크린쿼터 원상 회복을 향한 투쟁 오늘부터 시작입니다"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펼쳤다. 현장에는 시민과 취재진 등 약 300여 명이 몰려들었다.
교보빌딩 측은 이날 빌딩 앞에 테이프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임 감독 1인시위에 이어 오후 7시부터는 지금까지 1인시위에 참여한 172명의 주자 가운데 영화배우 안성기, 김부선, 권병길 등 40여 명의 영화인이 참석해 응원에 나섰다.
임 감독은 "영화 현장에서 제일 늦게까지 오래도록 현역으로 남아 있는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오늘 서게 된 것 같다"면서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여러분을 뵙는 것이 반가운 일인지 슬픈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한국 영화 사정이 서서히 나빠질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순식간에 열악한 조건으로 바뀔 것이며 그럴 때 한국 영화가 다시 일어설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만 영화계를 예로 들었다.
"대만은 한때 꽤나 영화를 많이 만들고 좋은 영화를 생산했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투자자들이 미국, 홍콩 영화가 돈이 된다고 그쪽 영화만 가져다 개봉해 수지를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홍콩·미국 영화가 옛날처럼 흥행성이 없어져 다시 대만 영화를 만들게 됐을 때는 영화를 만들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술, 촬영 등의 인력이 사방으로 흩어져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 한 편 찍으려면 사방에서 인력을 긁어모아야 간신히 찍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얼마 가지 않아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임 감독은 또한 "국민 여러분은 영화인들이 자기끼리 잘살자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운동을 한다고 오해를 많이 하고 계시는데 영화뿐 아니라 문화주권을 위해서도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그동안 영화를 통해 한국 문화, 한국인만이 가진 독특한 삶과 우리가 겪은 수난사를 담아내 세계에 내보냈습니다. 세계 속에서 보편성을 얻어내려 노력했고 어느 정도 노력한 결과가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든 영화는 스크린쿼터라는 보호막이 없었으면 도저히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 한국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는 정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임 감독은 마지막으로 "정부는 지금이라도 스크린쿼터를 원래대로 되돌려놔야 한다. 73일이라는 적은 날짜는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나는 나이가 있어 영화를 그만둬도 되지만 우리 영화를 이어나가야 할 젊은 세대에게는 스크린쿼터 축소가 굉장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편 영화인 1인시위의 첫번째 주자로 나섰던 배우 안성기는 "2월4일 시위 첫날 영하 15도였다. 그런 한겨울부터 지금 한여름까지 세 계절이 지나 1인시위가 끝을 맺게 됐다"고 감회를 밝혔다.
"처음에는 참 암담했다. 당시 정부 주도로 여론이 영화인들을 집단이기주의 단체로 몰아갔고 네티즌 역시 거기에 많이 동조해 참 힘들었다"는 안성기는 "더 심한 우리의 몸짓이 필요했을 때 오히려 반대로 우리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1인시위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때 상황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국민이 당시에는 몰랐던 FTA의 실체를 이제는 많이 알게 됐고,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정부는 국익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국익과 합치되는지 반드시 따져봐야 합니다."
그는 이어 "7월1일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일은 우리에게 또다른 시작"이라며 "스크린쿼터를 그냥 내줄 수 없다. 얻을 것은 얻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얻지는 못하고 내주기만 하고 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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