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 총장을 지낸 조기섭(曺己燮·76) 시인의 신문읽기는 올해로 꼭 60년째다. 창간 60주년을 맞는 매일신문의 나이와 같다. 조 시인에게 신문은 굴곡진 인생여정에서 중용의 도를 추구했고, 요즘 같은 속도의 시대에는 느림의 미학을 실현하는 동반자에 다름아니다.
격동의 세월, 신문과 함께 시대의 아픔을 나눴고, 신문과 더불어 교수로서 문학인으로서의 삶을 누려온 것이다. 일흔 중반의 나이인 요즘도 그는 조간(중앙지)과 석간(지방지) 신문을 두루 읽는다.
특히 매일신문과의 인연은 더욱 각별하다. "73년도인가 '목요탐방'란에 크게 한 번 났지. 이른바 명사탐방이란 코너인데, 그거 아무나 나는 게 아니었어…." 조 시인은 매일신문과의 오랜 인연 중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74년 1월 1일자 신년호에 '지식인의 자세'란 주제의 글을 투고했던 일이다. 긴급조치가 잇따라 발동되던 유신체제의 살얼음판 정국 때문에 당초 계획된 지면에 원하는 내용들이 모두 실리지는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투고자나 담당 기자 모두가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조 시인은 당시 지식인의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적 행태를 질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부끄럽지만 그것이 지식인으로서 최소의 항변이었다."고 회고한다.
조 시인이 매일신문을 처음 접한 것은 1956년.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시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대구 효성여중 교사로 부임하고 결혼을 했을 무렵이다. 그는 지금도 정치면을 먼저 읽는다. 그 이유를 묻자 "현대인에게 있어서 정치는 운명적인 것"이란 말로 대신한다.
그 다음에는 문화면을 펼친다고 한다. 그곳에 삶의 향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 시인은
어떤 신문을 구독할 것인가, 혹은 신문에서 말하는 논조가 맞느냐를 두고 내외간에 논쟁을 벌일 만큼 아직은 열정이 남아있다고 껄껄 웃는다.
조 시인은 창간 60주년을 맞은 매일신문에 대한 애정어린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개인사적으로 보면 60년이란 갑년(甲年)이고 이순(耳順)에 해당하는 연륜이야. 개인이나 신문이나 역사와 뿌리는 중요한 것이지. 그에 상응하는 성숙한 신문을 만들어야 돼…."
자유당 말기 최석채 주필의 필화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조 시인은 "오늘의 매일신문은 바로 그같은 시련을 바탕으로 반석 위에 올랐다."며 "자랑스런 역사를 지닌 만큼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시인은 신문을 잘 읽지 않는 요즈음 신세대들에게도 충고의 말을 덧붙였다. "문자를 통해서 사고가 형성되는데, 신문을 읽지 않으면 사고와 사유가 소멸되고 말아. 그렇게 되면 결국은 감각적이고 즉물적인 사회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지."
팔공산 자락에 살며 요즘도 버스를 타고 시내를 오가는 조 시인은 '속도의 시대'일수록 신문을 읽으며 '느림의 미학'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개인과 사회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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