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도를 가다] "가슴이 뛴다"…서도에서의 하룻밤

밤 11시가 넘었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여긴 독도. 그 중에서도 아무나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서도 아닌가. 취재진들조차 겨우 동도의 경비대 막사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게 대부분. 독도 주민 김성도(66)·김신열(69) 씨 부부가 살고 있는 서도 어업인숙소에서의 밤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내 땅이면서도 내 맘대로 가볼 수 없었던 독도…. 생각이 예까지 미치자 가슴이 뛴다. 도저히 누워있을 수 없다. 어업인숙소를 나섰다. 어둠이 깔리면서 잦아들었던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조용히 나선 발걸음이지만 낯선 이방인을 여전히 침입자로 간주하고 있는 모양이다.

서도의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흐렸다 맑았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 탓인지 별빛이 희미하다. 스산한 안개가 섬을 뒤덮었다. 어둠과 안개 속으로 동도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다가선다. 동도의 꼭대기에서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등대 서치라이트만 빼면 암흑이다. '여기가 우리 땅 독도구나.' 그렇게 서도의 한 밤을 가슴에 품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는다. 소주 한 병을 들고 김성도 씨 부부가 지내는 옆방으로 향했다. 부부는 전등은 끈 채 TV를 보는 중이다. 이곳에도 발전기는 있다. 김 씨는 울릉군에서 제공하는 연료를 아끼기위해 가능하면 발전기를 돌리지 않는다. 오늘 밤은 뭍에서 온 손님을 위해 발전기를 돌렸다. 부인 김신열 씨는 "덕분에 TV도 본다."며 웃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섰다. 서도에서 길이라 해봤자 어업인 숙소 뒤쪽 가파른 계단을 올라 정상을 넘어 물골로 하산하는 길 뿐이다. 998계단.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김성도 씨는 독도 유일의 생명수인 물골의 샘에서 물을 떠와서 먹었다. 지금은 동도 경비대에서 식수를 가져다 먹는다.

최대 경사도가 85도에 이를 정도의 가파른 계단이 서도 꼭대기를 향해 이어져있다. 밧줄을 잡고 한발한발 디뎌보지만 아찔한 건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다니지않아 군데군데 무너져 내리기도 했고 흙이 쌓여 계단이 없어지기도 했다. 괭이갈매기도 극성이다. 부화기의 괭이갈매기들은 불청객을 특히 경계한다.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조심하며 계단을 오르는 침입자에게 '똥' 세례를 퍼붓는다. 다가서지 말라는 그들만의 경고다.

계단 끝에서 왼쪽으로 10여m를 가자 전망이 탁 트인다. 며칠전 김성도 씨의 부인 김신열 씨가 계단을 따라 이곳까지 올랐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부부 만의 생활이 단조로웠을 게다. 그보다 김씨는 이 멋진 풍경이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도의 경비대와 등대가 코앞이다. 전날 동도에서 바라본 서도보다 더 뭉클하다. 가슴이 뛴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 주는 것은 사방으로 보이는 망망대해와 하늘. 발아래만 보지않으면 바다와 하늘 사이 공중에 떠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다.

이곳부터는 독도의 생태계를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서도는 지금 괭이갈매기 새끼들이 한창 부화하는 중이다. 벼랑 끝이나 바위 틈에 주로 둥지가 있지만 풀포기 사이에도 둥지를 틀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발에 밟힐 수도 있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길을 찾느라 헤매기도 했다. 물골로 내려서는 길을 찾을 수 없었던 것. 왕오장근 숲 사이로 겨우 길을 찾아 들어섰다. 바위를 덮은 흙에 뿌리를 내린 왕오장근은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 이곳부터는 독도의 식목지역이다. 몇해전까지 많은 단체에서 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용화대풀, 동백, 섬보리수 등이 숲을 이룬 상태.

오를 때처럼 내려가는 길도 가파른 계단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흙이 쌓여 겨우 흔적만 남았을 뿐. 자칫 잘못하다간 수십m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는 위험한 길이다. 왕오장근을 부여잡고 기어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조심조심 해안에 내려서자 놀라운 광경이 반긴다. 몽돌해안이다. 몽돌은 여느 바닷가의 것처럼 작지 않다.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큼직큼직한 몽돌들이다. "촤르르, 촤르르." 바닷물이 들었다 빠지는 소리도 힘차다.

물골의 샘은 높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막아섰다. 파도가 치면 샘에 바닷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몽돌해안 한쪽 구석에서 포탄 파편을 발견했다. 독도에 웬 포탄일까? 알고 보면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1948년 6월 8일. 독도에 나타난 미군 B29 폭격기의 네차례에 걸친 폭격연습으로 미역을 따던 어민 수십명이 숨졌다. 미국은 왜 독도를 폭격연습장으로 사용했을까? 일본의 계략이었다. 독도가 미군폭격 연습지로 지정되면 일본영토로 확인받기가 쉬울 것 같아 일본이 연습지 지정을 받기위해 혈안이었던 것. 어쨌든 이 지역은 지금도 수시로 녹슨 유탄이 많이 발견돼 당시의 참상을 말해 준다.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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