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는 지금 주거 혁명중] ①나무와 종이로 된 주택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1962년. 근대화의 상징물처럼 지어진 서울 '마포 아파트'가 시초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아파트'는 한국 주거문화의 보통 명사가 됐다. 부동산 가격 안정이 국가적 화두가 될 만큼 대다수 시민들이 아파트 가격에 관심을 가지며 이른바 '돈 되는 아파트'를 찾아 이사를 다니고 신규 분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작 '사람이 사는 집'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주거의 질'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집의 잣대로 학군과 교통, 고급 마감재와 첨단 제어 장치 등만 강조될 뿐 정작 환기와 습도, 채광 등 쾌적한 주거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 등은 무시되고 있다. 개인 주거의 친환경 문제를 떠나 지구 환경까지 생각하며 집을 짓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무게 중심을 용적률에 두고 그려진 설계도에 각종 화학 물질로 시공된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외국의 친환경 주거단지 사례에 대한 현지 취재를 통해 왜곡된 우리의 주거 문화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친환경 주거문화를 주제별로 나눠 살펴본다.

① 나무와 종이로 된 주택

통일 후 16년이 지났지만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은 아직도 구동독 지역의 현대화를 위한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초고층 빌딩이 쑥쑥 올라가고 도심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1990년 통독 당시와 현재의 베를린 도심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동서독 이질감을 벗겨낸 주거문화

도심 현대화 작업이 진행되는 사이 베를린 외곽 주거지역도 조용한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콘크리트 아파트 위주의 옛 동독 지역내 주거 단지를 친환경 단지로 바꾸는 작업이 1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

"동독 지역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통독 이후 독일의 주요 과제 중 하나입니다. 녹지 조성을 위해 아파트 단지 내 콘크리트를 벗겨내고 실내를 친환경 주택으로 개조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 친환경 주택 업무를 맡고 있는 베를린시 주택국 직원 그리트 샤데씨는 구 동독지역 주거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동독지역 주택은 대부분 물이나 전기 등 에너지 소비가 3배나 많고 어린이들의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고층 아파트 위주로 조성돼 있다."라며 "현재 베를린 외곽에 11개의 친환경 신단지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단지 중 한 곳인 아돌로스 호프 주거단지. 구 동독지역 군사 공항이 있던 부지에 조성되고 있는 이곳에는 현재 220가구가 입주해 있으며 현재도 집짓기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3년 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주택 단지와 다를 것이 없지만 설계부터 철저한 친환경 주택으로만 구성돼 있다.

단층과 2, 3층으로 구성된 주택건축에 사용되는 건축 자재는 벽돌과 목재, 종이 등 모두가 재생 가능한 친환경 소재로만 구성돼 있다. 또 태양열과 지열 등을 이용해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 한 것이 눈에 띤다. 스티로폼 대신 보온 및 습도 조절 능력이 두 배 이상 높은 불연성 재생 종이나 톱밥을 단열재로 사용하고, 콘크리트도 재생 톱밥을 넣어 사용량을 최소화해 방음과 단열성을 높여 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심지어 방수처리된 종이와 나무로만 지어진 집도 있다.

아돌로스 호프 주거단지 구성의 또 다른 특징은 유럽 대다수 국가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단지 조성에 개입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입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유지를 평당 30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대신 입주민들은 건축에 앞서 시청 담당자에게 친환경 주택 건립 계획에 대한 컨설팅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집이 완공된 뒤에는 한 달간 모델하우스(?)로 공개해야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그리트 샤데씨는 "처음에는 10여 채 주택만 있었지만 완공된 집을 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곳에 들어와 친환경 주택을 지으면서 불과 2년새 200여 채로 늘어났다."며 "이곳의 집들은 에너지 소비량이 기존 주택의 20%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주거단지의 화두는 '녹지'

베를린 도심에서 북쪽으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카로우 노드 주거단지. 1996년에 조성된 이 단지는 5천500가구에 주민 수 만도 1만 2천여 명에 이르는 대단지다. 그러나 이 주거단지에 들어서면 아파트가 주는 답답함이나 삭막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잘 꾸며진 도심 공원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아파트 동수만 줄잡아 200여 개가 넘지만 하나같이 구조와 높이, 건물 외벽 색상이 다르고 단지마다 소규모 정원과 수목 공간으로 채워져 있었다.

주민자치회장을 맡고 있는 슈란트 하엘 씨는 "단지 설계때부터 모든 가구가 철저히 녹지 개념을 갖고 건축했지만 단지 완공 후 입주민들의 노력도 중요하다."며 "수목 교체나 녹지 공원 조성 등에 있어 주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주민자치회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탓에 단지의 녹지율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했다.

설계 때부터 친환경 단지로 지어진 카로우 노드 단지는 콘크리트 시공이 필요한 차도나 보도를 최소화하고 단지 바닥의 상당 부분을 흙으로 노출시켜 놓았다. 빗물도 차집관 대신 자연스럽게 바이오톱(Biotope·생태 호수)으로 연결되도록 흙을 파낸 도랑이 만들어져 있다.

또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수풀로 둘러싸인 산책길을 조성하고 모래 바닥에 나무로 된 놀이터를 곳곳에 배치해 놓는 등 입주민들이 쾌적한 실외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 단지 관리에 정성을 쏟고 있다는 하엘 씨는 "베를린 도심에 비해 편의시설이 부족해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음악회나 문학 행사들을 열어 주민들의 친밀도가 높다."며 "일반 아파트에 비해서는 주거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베를린(독일)에서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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