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라! 이 격동의 현장을…60년 사진의 기억

소풍가는

초등학교 어린이와 음식을 준비한 학부모들이 대구 수성유원지로 소풍을 가고 있다.

(정재소)

수성못

전경

1940년대 말 복사꽃이 핀 봄날 수성못 일대 전경. 멀리 팔공산 능선이 보인다.

(배상하)

대구입성

다음날 미군 제 1진 지휘관 월 B 존슨(오른쪽)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일본군 제 80연대(현재

대명동 미 8군자리)를 찾아가 정문에서 80연대장 일본대좌(가운데) 의 영접을 받고 있다. 패전한

일본군 지휘관의 어색한 미소가 이채롭다. 왼쪽은 통역자 박기준씨(평론가. 대구사범학교 졸업후 동경외국어학교

영어과 졸업). 당시 대구에는 일본군 제 80연대외에 일본 공군기지가 동촌에 있었다.

(1945.10.2.이윤수 제공)

'유신

압재의 절정' 오원춘 사건

가톨릭 농민회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오원춘씨에 대한 2차 공판이 대구지법 제 1법정에서 열리고 있다.

오원춘 사건은 1979년 6월 안동농민회 회원으로 영양 불량감자종자 피해보상운동을 주도한 오원춘을

유신당국이 납치 폭행해 가톨릭교회와 유신정권이 정면 충돌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YH사건과

함께 전국적인 투쟁을 불러일으켜 부마항쟁과 10·26 박정희 피살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1979.9.26)

미·소

공동위원회 첫날 덕수궁에서 소련수석대표 스티코프 사령관(왼쪽), 미국 하지 중장(중간), 미국대표

브라운 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47.5.21)

경북

영덕군 남정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어린이들이 나무 미끄럼틀을 타며 놀고 있다.

(1954.김원식 제공)

송도해수욕장

돛단대 유람선

포항 송도해수욕장에 늘어선 돛단배들이 유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1962.8.도봉준)

경북

영천 금호강 백사장에서 영천군민 운동회가 열리고 있다.

(1948.11.김원식 제공)

청구대학

본관 신축중 붕괴

대구시 동구 효목동 청구대학 본관 5층 건물이 신축공사 도중 폭삭 내려앉았다. 이 사고로 10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붕괴사고는 당초 3층 높이로 짓기로 한 건물을 새로운 경영진이

무리하게 5층 높이로 짓다 발생했다. 청구대는 야청 최해청에 의해 1950년 4월 25일 설립된

이후 1967년 6월15일 건물 붕괴를 계기로 박정희 정권의 강압에 의해 대구대학과 강제합병을 거쳐

영남대학이 설립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67.6.15. 권정호)

세상을

감탄케 한 '송곳 답변'

1955년 9월 14일자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구속 기소된 최석채 주필이 제

2회 공판에서 당당한 자세로 심문에 응하고 있다. 심문에서 재판장은 "그런 사설을 안썼던들

테러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최 주필은 "그런 논법으로

한다면 그날 학도를 동원하지 않았던들 그런 사설을 쓸리 없고, 임병직 대사가 그날 대구에 오지않았던들

그런 학생동원이 없었을 것이니 결국 임병직 대사가 책임져야 된다는 이론이 아닙니까?" 라고

답했다.

(1955.11.26. 배상하)

시아버지

묘에 절하는 육영수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1963년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뒷산 선친 묘소를

참배한 가운데 육영수 여사가 절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박대통령의 구미보통학교(초등학교) 동기동창인

장월상씨

(1963.10)

8군 초청 경로잔치

대구 미 8군이 마련한 부대주변 대명동 노인초청 경로잔치에서 갓을 쓴 한 노인이 당구를 치고 있다.

(1964.11.8.권정호)

안익태

선생이 대구 계성중고등학교 피아노 독주회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1960년대.노익배 제공)

끌어내려지는

자유당 간판

자유당정권의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데모대가 대구시 중구 자유당 경북도당부 앞에 몰려가 간판을 끌어내리고

있다.

(1960.4.21.정재소)

대구

칠성교(구 신천교) 밑에서 노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약장수의 가설무대 공연을 구경하고 있다.

(1965.노익배 제공)

바닥에 처박힌 버스

태풍 사라가 몰고온 강한 비바람에 경북 월성군에서 다리 위를 지나던 버스가 하천에 처박혀 있다.

(1959.9.17.정재소)

경찰이

10·1일 폭동에 가담한 좌익 청년을 검거하고 있다. 2일 오후부터 대구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10·1사건

주모자와 용의자들에 대한 검거선풍이 불어닥쳤다. 11월말까지 대구와 주변지역에서 2천250명의 좌익정치·사회단체간부와

학생, 노동자, 농민 등이 검거됐다.

(1946.10.2)

태종학

시장 부임 직후인 7월 16일 대대구 건설기치 아래 신축된 동대구역사가 완공직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3년 뒤인 1969년 6월 역사 준공후 1971년 12월 말 선상역사도 완공돼 영남지역 여객

화물운송 기지로 발돋움했다.

요한

바오로 2세 대구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구시민운동장에 운집한 신자들을 향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1984.5.5.권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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