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살부터 47년간 매일신문 애독"…달서구 박영수 씨

"신문을 빼 놓지 않고 본 덕분에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불립니다. 모든 친구들이 지역에 관해 저한테 물어봅니다. 다 신문을 꼼꼼히 읽은 덕분입니다."

매일신문 열혈독자인 박영수(57·대구 달서구 용산동) 씨. 그는 못 말리는 '신문 광(狂)'이다. 신문을 읽고 스크랩하는 일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을 정도. 10살 때부터 매일신문을 봤다. 벌써 47년째.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던 아버지가 매일신문을 구독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일찍부터 신문을 접하게 됐죠. 어린 시절 한자공부를 하기에 신문은 더없이 좋은 교재였습니다."

군 복무 35개월을 제외하곤 줄곧 매일신문 독자였다. 1989년부터 17년 간 납부한 신문 대금 영수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꼼꼼한 독자이기도 하다.

박 씨의 뒷 주머니에는 30장이 넘는 종이 뭉치가 들어있다. 신문에서 잘라낸 기사 뭉치, 일종의 '지식 쌈지 주머니'인 셈. 크고 작은 신문 조각에는 홍어 맛집 소개에서부터 고속도로 통행료 문제, 정치현안, 남해의 관광지, 오지명·백윤식 등 연예인 인터뷰까지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가 숨어있다.

박 씨는 남다른 '신문 보기법'을 자랑했다. 먼저 1면부터 32면까지 대충 흝어 본다. 그날의 중요 이슈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그런 뒤에 다시 1면 머릿기사부터 31면 오피니언 면까지 천천히 정독을 한다. 요즘 그가 가장 즐겨보는 고정란은 '역사 속의 오늘'과 부동산 관련 기사들이다.

관심이 큰 내용은 형광펜으로 덧칠한다. 마지막으로 가위와 칼로 기사들을 스크랩해 보관한다. 보는데에만 2시간은 족히 걸린다.

박 씨의 집안 곳곳에 수십 권의 신문 스크랩북이 빼곡이 꽂혀있다.

"친구들과 대화 도중에 하도 제 말을 안 믿는 친구가 있길래 신문을 오려서 보여주기 시작했죠. 모르면서 우기는 사람한테는 신문이 약이라니까요. 하하."

박 씨는 사회, 문화, 법률 등 분야별로 스크랩을 하고 간직한다. 관심있는 기사를 놓치기라도 하면 하루 뒤에 신문지국에 전화해 신문 1부를 더 얻기도 한다.

"거실에 하도 신문을 펼쳐 놓는 탓에 아내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신문이 좋은걸요."

박 씨가 매일신문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상이 그럴 줄 몰랐죠.'(본지 2003년 7월 30일자 31면 보도)라는 제목의 기사다. 교통사고 피해자인 한 현직판사가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릴 뻔했다가 판사 신분을 밝히고서야 위기를 모면했다는 내용.

박 씨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겁니다. 사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시민들이 많거든요. 신문이 이런 일을 파헤쳐 주어야 합니다."

박 씨는 '적극적인 독자'이기도 하다. 길을 가다가도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되는 불합리한 행정이나 정책 등이 눈에 띄면 시청이나 구청 등 해당 기관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왜 그렇게 세상을 어렵게 사느냐.'는 주변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

한 사람이 수고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박 씨는 "신문 덕에 '만물박사'가 됐다."고 자랑했다. 사회의 흐름과 정보에 대한 갈증을 신문이 시원하게 풀어줬다는 것.

"60주년을 맞은 매일신문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시민들과 직결된 정보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해 주길 바랍니다. 제대로 된 대구·경북만의 신문을 갖고 있다는 것, 우리 근대사를 이끌어왔던 대구·경북지역민의 큰 자랑입니다. 매일신문은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도 지역민들의 기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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