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의 '여성 파워'가 가히 놀랄 만하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 전체 여성들 가운데 경제 활동에 참가하는 여성의 비율이 지난해 처음으로 50%를 돌파했다. 첫 여성 총리 탄생이 상징하듯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과거 남성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일부 직업에서도 여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늘에서 지하까지 이젠 여성들이 넘지 못할 영역은 없어 보인다.
☆타워 크레인 기사 임수정씨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임수정(38·여·대구 달성군 명곡리) 씨는 아파트 20층 높이의 65m 타워 크레인을 씩씩하게 오른다. "처음 오르는 사람은 헉헉거려요. 10분이 넘게 걸리죠. 힘들기도 하지만 남자들도 오르다가 무서워서 몇 번씩 망설이기도 합니다." 150m 타워 크레인도 올라봤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웬만한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여걸' 임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타워 크레인 기사로 활약하는 것은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의 영향이 컸다. "타워 크레인을 운전하는 남편을 쭉 봐오다 갑자기 타워 크레인을 몰고 싶었어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매력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남편이 반대를 한 건 불 보 듯 뻔한 일. 그래서 임 씨는 몰래 기중기 시험을 치렀고 6개월 만에 당당히 면허를 땄다. "크레인을 머뭇거리지 않고 단번에 오르니까 남편도 아무 말 못하더라고요."
임 씨가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타워 크레인 운전대를 잡은 건 아무래도 성격 때문.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와일드해 남자들에게 지기 싫어했다는 그녀다.
그래도 항상 긴장해야 하는 직업이 타워 크레인 기사.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크레인이 흔들리거든요. 그러면 무서움을 느껴요. 항상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전날 술자리는 피하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하죠. 남편과 저는 보통 오후 9~10시가 되면 눈을 부쳐요."
타워 크레인을 운전하면 남녀가 모두 평등하다.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번거로움도 있다. 바로 용무(?) 보는 일. 보통 남자 기사들은 타워 크레인 위에서 바로 해결하지만 여자는 될 수 있으면 참고 정 급하면 내려와야 하는 수고를 한다.
대구에서 일하는 타워 크레인 기사 200여 명 가운데 여성들은 고작 5, 6명 정도. 타워 크레인에 앉은 그녀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이다.
☆대구지하철 기관사 탁혜령씨
남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대구 도심 지하를 누비는 여성이 있다. 대구지하철 '홍일점' 기관사 탁혜령(24·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씨. 2004년 8월, 그녀가 대구지하철공사 승무팀 공채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시험을 볼 때는 여성들이 몇 명 보였는데 막상 합격자 속에서는 저 혼자 뿐이더라고요. 주위 동료들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별로 내세울 게 없는데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니 부담감도 많았어요."
그녀의 대학 때 전공은 항공우주공학. 대학 다닐 때부터 남자들 속에 끼여 있는 것이 익숙했다. "공학 계열로 지원할 때도 주위에서 힘들다고 말렸지만 별 두려움 없이 원서를 냈죠. 어렸을 때부터 남녀 구분하는 사회 분위기를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이곳 승무팀에 지원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여자인지라 경주에 사는 부모는 걱정이 반이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것은 다행이지만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 수시로 안부 전화가 걸려온다.
기관사로서는 처음으로 여자가 들어온지라 승무팀에선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적잖았다. "여자 근무복이 없어 남자 근무복을 그대로 줄여서 주더라고요. 몸에 맞지 않아서 애를 먹었죠. 보통 침실도 2인1실로 쓰는데 저는 혼자 사용해요." 하지만 동료들이 잘 챙겨줄 때는 아무래도 여자라는 장점을 무시하지 못한다.
"기관사란 직업은 불규칙한 근무 시간 때문에 무엇보다 자기 관리가 중요해요. 혼자 운행을 맡으니까 항상 긴장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죠.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책임지니까 뿌듯함은 어느 직업 못지않아요." 그녀는 1년이 지난 지금 동료들로부터 '탁군'이라 불릴 정도로 이젠 여자가 아닌 승무팀의 당당한 일원이다. 하지만 바람은 역시 여자 후배가 들어오는 것. "기관사는 특별히 남자들만의 직업이 아닌데 여성 지원자들이 별로 없어요. 빨리 여자 후배가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혼자는 아무래도 외롭거든요."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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