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라하게 변해버린 맞춤양복점. 너도나도 기성복으로 몰려가더니 맞춤양복점은 이젠 단순히 추억의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사양산업으로까지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왁자지껄한 것이다. 새로운 맞춤양복 전성시대를 꿈꾸는 맞춤 양복점이 늘고 있다. 이들의 생존 전략을 알아봤다.
■다시 뜨는 맞춤양복점…가격 낮추고 20·30대 발길 잡았다.
바깥 외관부터가 다르다. 마치 옷 매장처럼 디스플레이가 세련됐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대구 수성구 황금동의 한 맞춤양복점. 실내도 마찬가지. 20평 정도의 공간에는 패션 옷 매장을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가 돋보인다. 젊은 층에서 들어가기 꺼려하는 그렇고 그런 양복점 실내와는 사뭇 다르다. 장승천(50) 돈 지오반니 대표는 "타킷을 나이 드신 분보다는 젊은층에 맞추다보니 실내 디자인을 깔끔한 분위기로 꾸몄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맞춤 양복을 단순히 중·장년층에서 구입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20, 30대 직장인들도 전체 고객의 50% 정도를 차지할 만큼 젊은 층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렇게 이곳이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 덕분. 양복 한 벌에 17만 원에서 비싸봐야 38만 원을 넘지 않는다. 자체 공장에서 맞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만든다. 가봉 샘플을 여러 벌 배치해 그걸 기본으로 손님 각자의 취향에 맞게 조금씩 변화를 준다. 이런 재빠른 절차로 인해 손님이 완성된 양복을 찾는 시간도 주문한 지 24시간 내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곳은 이런 저렴한 가격과 빠른 마무리로 한 달에 평균 150벌 정도의 주문을 받고 있다.
이런 중·저가 맞춤 양복점은 이미 서울 강남 쪽에선 하나의 유행으로 통하고 있다. 장 대표도 서울 강남의 여러 맞춤양복점을 찾아 벤치마킹을 했다. 또한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게 TV 드라마는 물론 신세대 패션 잡지 등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장 대표는 "요즘 신세대들은 개성이 강하고 패션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고 전했다. 보통 잡지 같은 것에 나온 양복 스타일을 그대로 갖고 와 주문한다는 것. 이곳에서 세벌을 맞추어 입었다는 직장인 권태성(31·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씨는 "디자인도 신세대답게 깔끔하고 스타일도 까다로운 내 입맛에 맞다."고 했다. 장 대표는 "작년부터 대구에도 중·저가 맞춤양복점들이 하나둘 생겨 지금은 6, 7곳 정도가 성업하고 있다."며 "새로운 중·저가 맞춤양복점이 많이 생겨나면서 기존 양복점들도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급화' …100만원 넘는 가격 차별화
대구시 중구 대봉동 '베르가모 김태수 테일러'의 김태수(54) 대표는 양복 명장. 그만큼 자신의 맞춤 양복을 하나의 작품으로 여길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김 대표 역시 시대의 험난한 파고를 겪어야만 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대기업들이 기성복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거기에 밀려 문 닫는 주변의 양복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김 대표는 "한때는 직원이 8명 정도가 있었는데 손님이 계속 줄면서 지금은 직원이 한두 명 정도"라고 했다.
그런 위기에서 김 대표가 선택한 것은 양복의 고급화였다. 40여 년 동안 이어온 노하우와 대구에서 유일한 명장의 기술력으로 자신의 맞춤 양복을 명품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전략은 성공을 거둬 지금은 어느 정도 고정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맞춤 양복 모두 100만 원 이상을 호가하지만 품질에 대한 인정을 받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김 대표는 "획일적인 기성복에 만족을 느끼지 못해 맞춤 양복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면서 맞춤 양복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덧붙였다.
■'퓨전화' … 맞춤+수선·세탁까지 운영난 타개
대구시 남구 이천2동에 자리한 '천기봉 양복점'. 여느 양복점과 다를 바 없는 외관이지만 이곳엔 특이할 만한 것이 있다. 맞춤 양복은 물론 세탁과 수선을 겸하는 일종의 퓨전 양복점이다. 8평 정도의 실내에는 공간의 절반은 맞춤 양복으로, 나머지 절반은 세탁과 수선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세탁, 수선과 맞춤 양복은 50 대 50 정도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고동수(55) 대표는 13년 전 스승인 천기봉 씨에게 양복점을 물려 받으면서 세탁과 수선을 같이 하는 전략을 택했다. 물론 손님이 줄어든 탓에 맞춤 양복 하나만으로 힘들어 선택한 방법이었다. 고 대표는 "한때는 한달 평균 100벌의 맞춤 양복 주문이 들어왔지만 지금은 월 15벌 정도"라고 했다. 그래도 8년 전 최대 위기를 넘긴 덕분에 지금은 그럭저럭 운영이 된다는 것.
이곳의 맞춤 양복은 25만~30만 원선. 고 대표 혼자서 수작업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저렴하게 팔리고 있다. 고 대표는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맞춤 양복 만드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운영하고 있다."며 직업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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