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왕의 인물산책] '국수왕' 송학식품 성호정 회장

"공장은 하나님 것·나는 관리자일 뿐"

5척 단구에 눈이 자그마한 성호정(成浩貞·60) 송학식품 회장을 사람들은 '국수왕'이라고 부른다. 작은 국수 공장으로 시작해 연간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식품 기업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국의 록펠러'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여야 할 것 같다. 북한 아제르바이잔 볼리비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등국의 배고픈 사람에게 매일 한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어서 이다.

영천에서 태어나 대구 부산 서울을 전전하다가 북녘땅 가까운 경기도 파주시에 정착, 국수왕이자 한국의 작은 록펠러가 된 그의 삶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다. 잔잔한 감동이 밀려드는 눈물겨운 소설이다.

국수제조업을 했던 선친의 사업이 여의치 않아 그의 여듧 가족은 대구에서 부산으로 갔고, 부산에서도 야반도주해 서울로 왔다. 중졸 학력이 전부였던 그는 스물네살에 뻥튀기 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용산 개천가 판잣집마저 좁아 여섯 가족은 칼잠을 잤고, 그와 바로 밑 동생은 한겨울에도 천막을 치고 개천변에서 잤다. 탄약통에 뜨거운 물을 넣어 보온병인양 안고 잤다.

서울보다 수원 인천에서 뻥튀기 과자가 잘 팔려 자전거로 매일 수백 리 길을 달려야 했다. 좁은 차로에 뻥튀기 과자를 산처럼 쌓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는 어느날 버스기사에게 낭패를 당했다. 길을 비켜주지 못하자 경음기를 울려대던 기사는 그를 밀어붙여 넘어뜨렸고, 그마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차에서 내려 뻥튀기 과자를 발로 짓뭉갰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인생이 미워 무던이도 울었다. 어떤 땐 장사를 하다가 빨리 서울로 돌아오지 못해 야간통행금지 위반으로 경찰서 신세를 진적도 많았다.

뻥튀기 장사로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국수 기계를 한 대 샀다. 승승장구. 경남상회 강 사장이 밀가루 500 포를 지원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국수왕이란 별명은 이 때 시장바닥에서 붙여졌다. 잘나가던 그에게 곧 시련이 닥쳤다. 영업정지 위기에 몰린 지인을 도운 뒤 공무원에게 '인사'하게 한 것이 문제가 되자 공무원 3명을 살리려 자기가 돈을 받았다고 거짓 진술해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된 것. 전과자라는 낙인을 달고 농산물유통업에 뛰어 들었으나 경험부족으로 망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 장인이 거금 1천만 원을 지원해줘 새로 국수공장을 시작했다. 시장바닥에는 국수왕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쌀국수를 개발하고, 술 원료인 주정(酒酊)으로 살균시켜 유통기간을 늘리는 특허도 땃다. 1991년 파주 7천여 평 땅에 지금의 송학식품 공장을 만들며 시장바닥의 국수왕이 중견 기업가로 변신했다.

기독교 장로로 송학식품은 하나님의 것이며 자신은 관리자일 뿐이라고 여기는 성 회장이 굶주린 사람을 돕는 나눔의 삶을 살게 된 계기가 하나 있다. 뻥튀기 과자 장사를 하며 풍찬노숙하던 시절 추운 겨울날 누군가가 야전잠바 하나를 천막에 두고 갔다. 눈물겹도록 고마웠고 돈을 벌면 반드시 못사는 사람을 돕겠다고 맹세했다.

평양에 냉면 기계 2라인, 떡복이 기계 1라인, 떡국 기계 1라인으로 된 공장을 지어준 것은 2004년. 남한에서 팔리는 옥류면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다. 30여 명 이던 직원이 250여 명으로 늘었고, 북측은 냉면 기계 1라인을 추가 설치해달라는 요청을 성 회장에게 해왔다.

아제르바이잔과 볼리비아 등국은 선교사와 함께 돕는다. 그가 나라마다 매일 2천 명이 한끼를 먹을 수 있는 밀가루를 보내면 송학식품에서 기술을 배운 선교사가 국수를 뽑아 제공하는 방식이다. 북한 주민 1만 명에게도 매일 한끼 식사를 제공해왔으나 최근 약간의 문제가 발생해 일시 중단된 것이 안타깝다.

대구 경남 등지 고아원, 양로원, 120 개 비인가 복지재단도 돕고 있는 그는 꿈이 하나 있다. 집안 아저씨가 거저 준 경남 창령의 16만 5천 평에 양로원과 해외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이 만년을 보낼 수 있는 실버타운을 짓는 것. 파주 LG필립스 공장 건설로 사둔 밭이 고가에 수용될 예정이고, 사업도 번창해 그의 꿈이 이뤄질 날이 그리 멀지않아 보인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