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먼 나라 시인 구보씨의 이틀

층간소음이요? 에이, 그건 아래층 위층 사람들이 서로 집을 바꿔서 살게 해보면 되요. 콩글리쉬요? 듣는 사람들이 잘 알아들으면 안될까요? 외국인들이 쓰는 우리말을 우리는 재미있게 알아듣잖아요. 아이들의 생각은 기발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깜박깜박 현실 궤도를 이탈하는 자신의 사고와 행동이 스스로와 동료들을 몇 번 위험에 빠뜨릴 뻔하자 그는 노동을 그만 두었다. 갑자기 떠오른 싯구를 챙기다가 비계(飛階) 위에서 발을 헛디뎌 벽돌을 담은 뒷짐을 와르르 아래로 쏟은 일은 꿈을 재차 꿀 정도로 아찔한 것이었다.

다시 실직한 그가 친구의 주선으로 방과후 논술교사로 거의 삼십 년 만에 들어와 본 학교의 풍경은 한 마디로 완전한 혼란 그 자체였다. 우르르 교실에서 뛰쳐나온 원기발랄한 아이들은 온몸에 부딪쳐올 듯한 공처럼 여기저기서 튀었다. 까르르, 생활은 너무 즐거워.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이 모든 곳이 환했다. 같이 즐거웠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톡톡, 어떻게 두드려야 내밀한 곳에 들어앉은 저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깨울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제일 먼저 시를 한 편씩 읽었다. 윤동주와 이상과 김수영을 읽고 서정주와 김춘수도 읽었다. 김혜순과 에즈라 파운드도 읽었다. 함민복을 읽을 때는 교실 창밖의 화단에 석류꽃이 피어 있었다. 가난한 시인 아들과 고깃국을 먹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산문시를 천천히 읽어내리던 그의 귀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비 때문에 바람이 너무 차가운가. 문득 고개를 든 그가 본 것은 아예 책상에 엎드려 우는 아이, 벌게진 눈자위로 안경을 벗어 닦는 아이, 짐짓 헛기침을 해대는 아이들이었다. 뭉클했다. 이미 몇 번 시를 읽었던 터라 그 내용의 슬픔을 그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얘들아, 울다니!

모르는 척 끝까지 시를 읽고 난 그는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본 자들이 인생을 안다는 옛말을 꺼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 사이에도 은근히 떠돌던 톱밥 같던 기류가 어느새 싹 사라져 버렸음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톡톡, 내가 저 아이들의 내면을 두드린다고? 무뎌진 감성의 먼 나라 시인 구보 씨는 톡톡 아이들이 두드린 듯 붉어진 얼굴로 다시 창밖 화단의 석류꽃을 바라다보았다.

박미영(시인·대구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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