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규(53·경산성당) 신부를 기자가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이었다. 당시 대구 수성구 고산성당에 몸 담고 있던 그는 막 '고산생명공동체' 문을 열고 유기농산품을 주민들에게 선보이고 있었다. 90년대 초반부터 꾸준한 관심을 가져 온 환경과 생명 운동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농촌에서 대안학교를 추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궁금증이 들어 지난 6일 오후 경북 영천시 화북면에 있는 '오산자연학교'를 찾았다. 오산자연학교는 정 신부가 2002년 폐교를 개조해 문을 연 청소년 체험교육장이다.
"보세요. 똥이 훌륭한 액화 비료가 됐지요?"
마침 정 신부는 견학 온 대구시내 학교장들에게 친환경 인분처리 시설을 설명하고 있었다. 정화 탱크에서 깨끗하게 처리된 물(비료)을 손으로 적셔 보이는 정 신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 기술은 1995년 그가 일본에 잠시 머물 때 농가에서 배운 정화원리를 응용한 것이었다.
대안학교에 대해 물었더니 대뜸 학교 마당에 줄 선 유치원 버스들을 가리켰다. 천연염색 체험을 온 아이들이었다. "저것 보세요. 교사들이 아이들을 줄부터 세우잖아요. 자유롭게 풀어놓고 뛰어놀게 하기보다 사진 찍기 더 바빠요." 아쉬운 표정이었다. 일회적인 '구경'에 그치지 않고 학교 형태를 갖춘 교육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가 말한 대안학교(가칭 '산자연학교') 추진 이유였다.
그는 "캐나다 밴쿠버에 갔을 때 많은 한국 학생들이 조기유학을 온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과연 '한국에는 공교육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시·경쟁 위주 교육에 깊은 회의를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대안학교의 정신을 '생명주의'로 요약했다. 남보다 앞서나가기보다 자연 속에서 함께 뛰놀며 배우자는 것. 불교에서 말하는 공생과 화합의 원리인 셈이다. 고산성당에 있을 당시 대구 은적사 스님과 종교를 초월한 행사를 가질 정도로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그이기에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정 신부는 대안학교를 "15년 노력의 결정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환경운동에 앞장서게 된 것은 90년대 페놀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후 (사)푸른평화를 시작으로 '생활협동조합'을 통한 건강한 먹거리 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지난 15년간 정 신부의 화두는 '건강한 생명'이었다.
대안학교는 현재 추진위원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단계라고 했다. 하반기 중으로 경북도 교육청에 신청서류를 내고 내년 학기에 맞춰 문을 열 생각이다. 1~6학년까지 전교생 20명 규모의 작은 학교. '말과 글' '과학' '외국어' 등 기본 교과목 이외에도 '몸 깨우기' '사랑나누기' '생태체험' 등의 과목으로 채울 계획이다.
그는 전국 대안학교 운영자들이 모이는 행사에 참가하랴, 성당과 오산자연학교를 오가랴, 미사를 보랴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바쁘긴요? 원래 신부가 좀 심심합니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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