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지도자를 기다리며

내년은 우리나라 정치사에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크게 세 가지 과정을 겪었다. 피와 땀 그리고 사상적 갈등과 눈물로 이룩한 건국, 동족상잔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킨 산업, 국가여론의 지향과 인권을 위한 민주화 투쟁이 그것이다. 이제는 현대화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이다. 선진화를 지향하는 한국을 이끌고 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그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런데 큰 걱정이 있다. 국민 의식수준은 날로 향상되고 있는데, 정치집단의 의식수준은 국민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분 한 분은 훌륭한데 함께 모인 당파는 오직 권력만을 추구하는 조선조의 사색붕당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과 소통하여 새로운 국가에너지를 만들고, 흥을 돋워 줄 정치지도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우리나라가 풀어야 할 첫 번째가 올바른 정치지도자를 찾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국민이 정치를 아무리 경멸해도 정치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기 때문에 지도자를 바르게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치지도자는 단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올바른 생각은 세상을 바꿔 놓는 힘이 있다. 역사적인 업적과 지속되는 발전도 그 시작에는 정치지도자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 고금의 역사를 봐도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가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쇄를 좌우했다는 기록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올바른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지도자로서,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갈 정치지도자를 양성하는 선배로서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 있었다. 또 지도자의 자리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자리가 아니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자리라는 사명감도 철저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에 뵈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선생은 정직했고, 겸손했고, 애민, 애국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셨다. 나는 선생의 가르침을 일생일대의 큰 교훈으로 삼고 살아왔다.

이미지정치가 판치는 요즘, 정치의 학술적인 정의를 간단히 되새겨 본다. 정치란 공동목표를 추구하는 활동이고, 갈등을 조정하여 조화있는 삶을 추구하는 활동이며, 의무를 다하기 위해 권력을 수단으로 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최소한 교양과 지식이 있는 상식인이어야 하고, 탐욕스럽지 않고, 이기적이지도 않아야 한다. 정권에 따라 좌고우면하는 갈대가 되어서도 안 되며, 자의적으로 적과 아군으로 갈라서도 안 된다.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개혁성, 도덕성, 안정성, 일관성, 통합력, 실천력을 겸비해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도 커졌다. 국민은 이제 나라의 주인답게, 넉넉하고, 편안하게, 즐겁고, 당당하게 살고 싶어 한다. 정치도 이젠 국민들의 욕구에 맞추어 실천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를 하겠다는 백 번의 약속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소중하며, 국민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된 서민정신이 없으면 바른정치는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 망하듯 생산적인 정치활동을 하지 못한 정치인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에 대해, 기회주의적이고 오만한 정치인에 대해 국민은 단호해야 한다. 지역과 계층을 분열시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정치인에게 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속성이 있어 흑과 백으로 나눠지는 수직적 사고에 더 익숙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국민은 정치인의 어떤 과오도 쉽게 용납하고, 신의 잃은 정치인을 침묵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정치인은 수평적 사고로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를 수용하고 소통해야할 의무가 있다.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독선에 빠져있거나, 스스로 정치활동을 포기한 사람이다.

내가 기다리는 정치지도자는 본분을 잊지 않고, 책임감을 느끼고, 높은 품성을 지니고, 눈과 입과 귀가 건강해서 스스로를 가장 경계하고, 양심있게 행동하며, 모두를 싸안을 줄 아는 덕과 지혜와 용기의 지도자이다. 국민에게 한없이 겸손한 서민정신의 소유자로서 과거의 잘못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 어떤 최고의 제도적 장치도 결국 지키는 것은 사람이다. 그런 지도자들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이상적일까?

이수성(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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