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 프리즘] 디오게네스적 인간과 경쟁

고교생 5명 중 1명꼴로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는 어느 교원 단체의 조사보고서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모들을 착잡하게 하고 있다. 살벌하다고 할 정도로 긴박감을 느끼게 하는 이 무한 경쟁의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에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쟁은 학습과 업무의 효율을 끌어올리고 삶을 생기 있게 만들며 생활을 재미있게 해 줄 있다는 점을 가르치지 않는다. 질투는 경쟁의 부산물이고 때로 질투심은 사람을 진보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가르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생결단이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밥 먹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윽박지른다.

교육이 경화되어 유연성을 상실하게 될 때 기존의 선망 받는 직업에 모든 인재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의사 지망생과 고시 지망생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지금 대학가에는 비록 탁상공론이라 할지라도 진보적 유토피아, 새로운 가치와 윤리, 국가와 민족의 장래 같은 거시적 담론은 사라지고 맹목적 소비주의, 고시 열풍과 같은 계산적 합리주의, 일상의 허무와 무의미에서 탈출하려는 육체적 쾌락주의 등이 모든 논의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입시라는 목전의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을 용납해 주겠다는 부모와 자식 간의 묵계가 대학을 이렇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결과중시주의는 필연적으로 한탕주의와 기회주의자들을 양산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진정한 배움의 기쁨이나 평생 가슴에 남게 될 진한 감동 따위는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정해진 몇 몇 자리를 위해 치열한 소모적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스스로 새로운 '자리'를 창조하려는 분위기가 넘쳐흐를 때 그 사회는 젊어지고 탄력성이 유지된다. 나보다 앞서 가는 사람을 시샘하고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탐하기보다는 자신의 '햇볕'을 지키고 즐길 수 있는 디오게네스적인 인간형이 존경받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새로운 자리를 창조하며 그 공간을 의미 있게 확장할 줄 아는 열정적인 삶의 본보기를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경쟁과 긴장을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윤일현 (교육평론가, 송원학원 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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