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포럼] 출산은 창조이자 삶의 의미

남성에 의해 쓰여진 '역사'(history)에는 대체로 여성의 존재와 삶은 없거나,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가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탄신 800주년을 맞은 일연선사의 '삼국유사'에는 여성의 존재와 일상적 삶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어 놀랍다. 최고 지위인 왕으로부터 최하층 신분인 종에 이르기까지, 또 어린아이에서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한 계층과 연령, 직업의 여성들이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대 여성들은 각각의 역사적 서사의 켜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수행하는데,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유형은 삶의 과정에서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자기 정체성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을 하여 자신의 존재에 변화를 주는 여성들이다. 알영, 허황옥, 문희 등이 그들이다.

둘째 유형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여성들이다. 이들 여성이 이루어낸 일은 크게 출산과 공적 업무로 나누어진다. 출산은 생물학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기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명 부여의 의미 이외에 삶의 의미가 부여되어야 하는데, 어머니의 '자식낳기'는 이 둘을 모두 포함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출산은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가장 바탕이 되는 일이자, 창조적인 활동이면서 남성은 하지 못하는 성스러운 행위이다. '삼국유사'에는 이렇게 출산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 어머니들이 많이 등장한다. 웅녀와 유화, 만명부인, 도화녀, 요석공주가 대표적이다. 또한 일을 통해서 사회에 자신을 드러낸 여성들은 일정한 사회적 직분을 가진 여성들로 이들은 사회 혹은 국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충실하게 수행해냈다. 선덕여왕을 비롯한 신라의 세 여왕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고 국가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과업으로 여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셋째 유형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남을 도와주는 여성들이다. 남을 도와주는 여성들은 자신보다 타자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 특별한 능력과 희생, 현명한 판단을 통해 간여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거나, 자신의 전 재산 혹은 목숨까지 내어 놓는 여성도 있다. 선도신모, 운제성모는 신적 능력을 발휘하여 다른 사람을 위험에서 구해주거나 깨달음을 주었으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섯 가지 기쁨을 얻고자 한 호랑이 처녀도 이 유형의 여성이다.

지난 주간, 우리는 열한번 째 여성주간(7월1일~7일)을 보냈다. 여성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남녀평등의 촉진 등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을 드높일 목적으로 정한 여성주간이면 전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올 여성주간에는 1.08이라는 세계 최저의 초저출산율을 기록, 심각한 인구감소라는 사회적 우려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여성들의 강력한 요구가 공존하면서, 그와 관련된 다양한 학술행사와 여성행사가 많이 열렸다.

이번 여성주간에 제기된 많은 문제 가운데 눈여겨 볼만한 해법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고대여성들의 삶 속에 '오래된 미래'처럼 담겨 있다. 자기 정체성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성찰하여 존재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여성, 출산 과업을 실현하거나 공적 업무를 완수한 여성, 일을 통해 사회적 직분을 훌륭히 수행한 우리 고대 여성들의 삶은 우리의 앞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유효한 미래'이기도 하다.

이정옥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위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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