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국회는 국민적 합의를 존중하라

사법제도의 혁신과 변화를 기대하는 국민 기대와는 아랑곳 없이 국회의 태도가 무성의 하기 그지없다.

국민적 공감대를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제출된 안건들이 무더기로 잠자고 있다. 이들 안건 중에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와 연계해 처리를 미루고 있는 안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 국회차원에서 구체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국회의원은 미뤄도 아무런 불편이 없지만, 아니 미룰수록 위세가 더 올라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해당사자들에겐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한나라당 소속인 안상수 국회 법사위원장은 최근 한 법률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대통령 직속기관에 불과하며 입법 기능은 국회가 가진다."며 "사개추위의 법안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고 말해 그 동안의 논의 결과를 백지화 할 수도 있음을 내비췄다.

대통령 직속 사개추위가 무엇인가. 국민들의 사법개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2005년 1월 공식 출범했다. 그 이전에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사법개혁 합의에 따라 2003년 10월 28일 대법원장 산하에 발족한 사법개혁위원회의 후속기구 성격이었다.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국무조정실장이 실무위원회를 맡는 등 구성 인물과 인물들의 정부 내 역할로 보면 실제 정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개추위는 그동안 공판중심주의, 검·경 수사권 조정, 고법 상고부 설치, 법학전문 대학원(로스쿨) 설치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제도들에 대한 안건을 만들어냈다. 논의 과정에서 숱한 이견과 갈등이 있었지만 조정과 절충을 통해 대체로 합의된 안을 도출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개추위의 이런 추진 의지를 믿었기에 많은 대학들은 로스쿨을 유치하기 위해 대학 행정력을 집중했다. 실제 경북대의 경우 20명의 교수를 새로 충원했으며 영남대는 5명에다 연말까지 5명을 더 충원할 계획으로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허사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정기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당초보다 1년 늦어지지만 실제 현 국회 임기 내 법안이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어졌다. 이제 막 사법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대학 1, 2학년생들은 사법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말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법관의 업무 부담량을 줄여 국민들에게 3심을 받을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도입 하려든 고등법원 상고부도 국회에 발복이 묶인 탓에 고법 상고부를 준비하던 법원도 일손을 놓은 상태다.

지난해 중반부터 올 초까지 검찰과 법원을 달궜던 수사권 조정 문제도 완전히 수면 아래로 잠복해 버렸다.

물론 효율적인 법률을 만들기 위한 국회의 사전 점검 기능은 충분해야 한다. 하지만 당리당략에 매달린 탓에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안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는 안된다. 큰 줄기는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정도라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 아니면 차라리 부결시켜 국민이 기대라도 하지 않게 하라.

최정암 사회1부 차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