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과 함께] 잘난 척쟁이 경시대회

경쟁은 노력과 발전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자극제다. 주위의 칭찬이나 비난에 한창 민감한 청소년기에는 그 위력이 한층 더하다. 지지 않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그러나 경쟁이 인간의 성장에 올바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는 것, 정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경쟁에서 진 상대방을 보듬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 가운데 청소년기에 특히 중요한 것은 경쟁의 과정을 즐기는 자세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이나, 졌을 때의 비참함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꿈틀거린다면 그 경쟁은 오히려 건전한 성장을 가로막는다. 어른들이 살피고 배려해야 할 대목이다.

이 책의 주인공 제이크에게 느닷없이 닥친 교내 과학경시대회에는 그러한 어른들의 자상함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 나온 컴퓨터를 홍보하기 위해 과학경시대회 상품으로 최신형 컴퓨터를 내놓은 컴퓨터 상점의 주인이나 여기에 동의해 처음으로 경시대회를 연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비정상적인 경쟁을 부추기거나 방관한다. 경쟁에 이겨 잘난 척하는 학생이 되도록 만든다.

평소 잘난 척쟁이를 가장 싫어하는 제이크 역시 최신형 컴퓨터 욕심에 점점 잘난 척쟁이가 되어 간다.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과학 공부의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가장 친한 친구마저 멀리하게 된다.

그러나 친구의 풀죽은 얼굴을 본 순간, 제이크는 깨닫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잘난 척쟁이가 되려 발버둥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한지, 친구를 외면하고 비겁하고 얄밉게 굴었던 일이 얼마나 나쁜지.

친구와 다시 마음을 맞춰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제이크. 둘이 하루 종일 과학 실험에 매달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경시대회도, 최신형 컴퓨터도, 잘난 척쟁이 친구들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완벽하게 신나는 하루였다는 뿌듯함 뿐. 이것이 바로 경쟁의 과정을 즐기는 자세다.

제이크의 깨달음이 대견하다 여기다가 문득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오만 가지 경쟁에 내몰린 우리 학생들, 어떻게든 경쟁을 부추기려만 드는 어른들에게 떠밀려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마저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이 과연 제이크처럼 제 힘으로 바른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경쟁에 대한 흥미를 잃기 전에, 친구를 잃기 전에, 절망과 비탄에 빠지기 전에.

초등학교 고학년생을 위한 동화책이라고 하지만, 경쟁지상주의에 빠진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이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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