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남재만 作 '사랑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남재만

'그대를

사랑하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사랑이 그대 밑에 있고

'사랑하오

그대를'

이렇게 써 놓고 봐도

그대가 사랑 밑에 있네.

그래서

'그대를 사랑하오'라고

써 봤더니, 또

사랑이 그대 뒤에 있고,

'사랑하오 그대를'이라고

썼더니 역시

그대가 사랑 뒤에 있네.

아아 그 누굴 사랑한다는 것

그건 애시당초

말이나 글로는

가당치 않다는 걸 알겠네.

인간의 사랑은 말로 시작한다. '그대를 사랑하오', 아니면 '사랑하오 그대를'이라고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되는 말에는 '그대'와 '사랑' 사이에 '앞'과 '뒤'가 있고 줄을 바꾸면 '위'와 '아래'가 있다. 사랑의 몸인 '그대'와 마음인 '사랑' 사이에 틈이 있다는 것이다. 일체를 꿈꾸는 사랑의 표현은 인간의 말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말로 시작되지만 '완전한 사랑'은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완전한 사랑'은 '인간의 말' 이전의 세계인 것이다.

결국 인간의 '불완전한 말'은 '불완전한 사랑'을 낳기 마련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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