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병원 아마추어 등반모임인 '대간종주대'는 지난 6월1일 동양의 알프스라 불리는 중국 사천성 쓰구낭산군 따구낭봉(5,355m)등정에 성공했다. 다음은 오정도 대원(진단검사의학과)의 나흘간에 걸친 등정기.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내린 북경공항. 공항감시 견공들이 몰려와서는 우리 짐 앞에서 넙쭉넙쭉 엎어지는 통에 짐을 풀어헤쳐 준비해간 고기를 곁들인 찬거리는 모조리 북경공항 견공들의 간식거리로 털려버렸다. 시간에 쫒겨가며 천신만고 끝에 비행기로 갈아타고 안개 짙은 성도(成都)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가 좀 지나서였다.
중식 후 일륭으로 향하는 길은 포장과 비포장이 번갈아 가며 이어지는 중앙선도 없는 비좁고도 험난한 길이어서 고비마다 아찔아찔하고 오싹오싹하였지만 이곳에 익숙한 현지인들에게는 너무도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었을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검은 털을 길게 늘어뜨린 야크 들이 길바닥에 내려와 있어 놀라기도 했지만 전혀 딴 세상에 와 있음을 실감하였다.
우리일행이 일륭의 금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열한시가 넘어서였다.
둘째 날. 아침은 따뜻하게 데운 말 젖에다 몇 가지 현지 식이 나왔다. 말에 짐을 싣기 위해 로비로 짐을 끌어내고 배낭에 넣을 물건을 챙겨 호텔을 나선시각은 7시 50분이었다. 우리는 해자구와 장평구를 가르는 능선을 따라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는데 아래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쓰구낭산 군의 위용이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자 대원들은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해자구로 향하는 해발 3400m의 조산평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이곳 원주민인 장족들의 제례의식 탑이 형형색색의 헝겊 조각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조산평에서 해자구로 향하는 길은 우측 비탈길을 유유히 따라가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게 되어 있었다.
말발굽의 흔적이 난무한 오솔길을 따르자 마침 먼지가 폴폴이는 쉼터가 나타났었는데 이곳이 대본영이었고 이곳에서 중식을 하기로 했다. 말과 사람들이 뒤섞여 인수의 구별이 없을 지경이었지만 분위기만큼은 자연스러웠다. 중식은 컵 라면이었는데 도통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그래도 몫은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에 젓가락을 들었다. 일행에서 자꾸 멀어지던 K대원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해 대더니 급기야 라면 한 젓갈도 입에 못 대고는 드러누워 버렸다. 당혹스러웠지만 조금 지나 적응하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안내인의 말을 믿으며 중식 후에 한숨 딱 자고 갔으면 좋겠지만 오늘목표가 노우원자라 일컬어지는 3800m 지점이라 골골거리면서도 일어서야만 했다.
우리 일행이 야영을 하기위해 숲에 둘러싸여 잔디가 잘 자란 노우원자의 평지를 찾아 텐트를 친 시간은 아직도 해가 중천에 머문 3시 반쯤이었다. 고소증 적응 훈련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오후 5시반경부터 시작한 비가 밤새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텐트 속에서 밤을 보냈지만 말들은 고삐를 풀어둬도 밤새 비를 맞으며 주변을 뜨지 않았다. 대원들의 노닥거림을 뒤로하고 텐트로 돌아와서 누웠으나 감기증세는 지속되었었고 쉴 새 없이 텐트를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내일은 4200m에서 머물러야 하는데 이런 컨디션으로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셋째 날.새벽에 눈을 떴을 때 비는 그쳐 있었고 어제 골골거리던 대원들은 모두 팔팔하였다.
밤새 내린 비로 하얗게 눈을 이게 된 봉우리들 밑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해자구 계곡이 보이는 초지까지는 어제처럼 고도가 서서히 높아지나 싶었지만 이곳을 벗어나면서 기댈 곳이라곤 없는 언덕을 바로 치달아 올라야하니 반쯤 죽을 맛이었다. 우리일행이 지나는 언덕배기에 마치 멧돼지가 뒤지듯이 땅바닥이 파헤쳐져 있었는데 야크들이 염분을 찾아 땅을 뒤지곤 한단다.
해발 4020m지점의 언덕배기에 앉아 휴식하면서 아침에 배당한 사과하나씩을 처분하고 일어섰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자 쓰구낭산의 봉우리는 운무를 뚫고 하늘로 사라졌지만 설산 아래로 펼쳐진 초원에는 훨씬 더 많은 야크 떼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뒤를 돌아보아도 해자구를 둘러싼 설산 봉우리가 막아섰고 사방이 천연요새로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었지만 전연 갑갑하지 않는 장쾌함이 이곳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C 대원은 마침 현지 가이드가 행하는 동충하초를 찾아 캐는 법을 그 자리에서 습득하여 벌써 몇 뿌리 째 파헤치고 있었다. 저녁식사 후 밤새 뒤척이고 있는데 밤 10시를 넘기면서 또다시 빗 방울소리가 텐트를 쉴 새 없이 때리고 있었다. 내일 새벽 3시에 기상해서 따구낭봉을 등정해야하는데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넷째 날. 새벽 네 시 반에 따구낭 봉을 향해 과도영을 출발했다. 30분을 오르자 눈을 밟기 시작하였고 넓쩍넓쩍하게 깔린 암석들의 너덜지대 위로 눈이 덮고 있어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도가 높아갈 수록 적설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제 밤 밤새 내린 비가 이곳에선 고스란히 눈으로 쌓인 모양이었다. 두 번의 휴식이 시작될 때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라는 현지가이드의 지시가 있었다.
서서히 지치기 시작하였지만 능선 안부아래에서 휴식과 함께 발아래 펼쳐지는 운해를 보면서 모두들 황홀한 감격을 맛보았다.K대원의 고소증세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오전7시 30분 안부에 올라서자 우리가 오르기로 한 따구낭봉을 제외한 쓰구낭산의 세봉우리가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K대원은 거의 기진맥진 상태였고 격려하며 함께 오시던 국장님마저도 고소증세가 뚜렷이 나타나는 듯 했다. 이러다가 대간종주대의 전원등정에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이곳에서부터 적설량은 허리까지 푹푹 빠졌다. 눈사태 난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고 특히 우리가 가로 질러야하는 비탈길 역시 눈사태가 염려되는 곳이었다. 비스듬한 비탈 20여 미터 아래로는 말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였다. K대원을 끝으로 모두 무사히 비탈을 빠져 나와 정상직전에 펼쳐진 둔덕에 올라서자 사방은 기가 막힌 절경이었다.
민산산맥의 능선들이 둘러쳐져 있는 가운데 쓰구낭산의 네 봉우리가 마치 연꽃을 피운 듯 솟아있었다. 칼끝처럼 뾰족한 야오메이봉(6250m)은 아직도 미등이란다. 왜 목숨을 걸고도 산을 찾아오는지 사방을 둘러보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해가 됐다. 황홀함에서 미처 깨어나기도 전에 주변의 봉우리들은 운무를 끌어당겨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에 바빴다.
대원들로부터 탄성과 우려소리가 번갈아 일어날 때 정상을 향한 마지막 공격이 시작됐다. 한 발짝을 움직이는데도 이렇게 힘이 들다니 지난번 특집 방송에서 본 히말라야 8000m급에서 '자일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신들을 왜 그냥 뒀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오전 9시 반. 일진이 도착했다는 신호가 왔다. 불과 수십m 거리인데도 10시15분에 마지막 후미 K대원이 도착함으로서 12명 전원 완 등에 성공했다(쓰구낭산군 따구낭봉 5355m).우선 사진 몇 컷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감격의 시간도 잠시 10시 반에 하산을 시작했다. 눈사태가 우려되든 지점에서 앞장서서 하산지점을 확보하던 C가 갑자기 벼랑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연실색! 모두들 경악! C는 잽싸게 몸을 돌리더니 눈 속을 삐죽이 솟은 돌부리를 잡는데 성공!
오~ 감사! 쓰구낭의 여신이 우리를 외면하지는 않았구나! 거의 얼이 빠진 상태로 과도영으로 하산하였다.
과도영에는 우리를 하산시킬 말과 마부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말을 타고 내려왔다는 말보다는 나로서는 거의 매달려 왔었다는 말이 옳았다. 듣기에 따라서는 처량하기도 하고 애간장을 녹일 듯이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길게 뽑아대는 마부들의 애환 서린 목동가를 들으면서.....
*참고로 여러 방면으로 활로를 마련해 준 세기여행사의 김위영 사장님께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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