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와이드 인터뷰)김준성 前총리 "비전이 있어야 한다"

"대구경북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시된 비전마저도 지역사회와 시·도민들과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초대 대구은행장을 지낸 김준성(金埈成·87·전 경제부총리) 이수그룹 명예회장이 12일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구상공회의소 창립 100주년·매일신문 창간 60주년 기념 '새로운 100년의 대구·경북경제' 심포지엄 기조연설을 위해 고향인 대구를 찾았다.

김 회장은 매일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각 분야의 특성을 중시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수평적·개방적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고향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김 회장은 현 경제환경에 대해 "국가간 또는 지역내 경제통합이 더욱 빠르게 진행됨으로써 자원의 국가간 이동이 상품뿐만 아니라 돈, 사람, 기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글로벌화와 IT(정보기술)의 발달 및 첨단기술의 융합화, 분권화와 지방화 시대 도래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런 변화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역 스스로 능력을 키우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펴낸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경제계의 원로로부터 대구경북 경제의 문제점과 해법을 들어봤다.

▶이번 달부터 민선 지자체장 4기가 시작됐고, 경제살리기가 가장 큰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도 20년 이상 지역경제회생이 주요 정책과제였지만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대구는 섬유도시라는 과거의 영광에 도취돼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구미 등 주요 산업도시들도 생산기지로서 주어진 과실에 안주하며 지식기반 혁신클러스터로 발전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와 LCD 등 첨단기업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구경북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유는 경제의 앞날을 내다보는 기업인의 통찰력 부족과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꺼리는 보수성, 그리고 지역경제를 앞장서 끌어갈 리더십의 부재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경북의 경제위기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경제통합론이 시·도민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 경제통합에 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대구경북 경제통합은 지역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기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한 숫자적인 통합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업을 중심에 두고 산업이 실질적으로 연계되어야만 경제통합의 시너지가 극대화 될 것입니다. 구미의 첨단업종이 왜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지를 분석한 뒤 이 문제를 대구가 함께 해결하는, 도시간 역할분담과 협력으로 기업이 실질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구미를 비롯한 경북지역 대기업에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일본기업의 대구유치를 대구와 경북이 공동으로 노력한다든지, 동해안과 경북북부 지역 관광지 개발에 대구자본과 일본자본이 협력해 투자한다든지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과학기술·경제관련 주요 보직에 외부 전문가를 기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관료가 경제정책을 주도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지만 관의 협력없이 경제발전을 이룩하기도 어렵습니다. 관료들이 경제와 관련된 각종 조사나 현황 파악을 할 수 있지만, 어디에 또 어떤 분야에 투자를 하고 시장을 개척할지는 기업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을 잘 이해하는 외부전문가를 채용해 관료들과 협력하도록 하는 발상은 아주 필요하고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구와 구미, 포항 등 지역기업들이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옮겨 가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기업은 기업논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괜찮은 지역기업이 지역을 떠날 때는 지역의 기술이 뒤떨어진다든지 노사관계에 문제가 있다든지 시장이 없다든지, 하여튼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기업에만 맡기지 말고 시·도와 기초지자체가 공동위원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대구경북은 하나의 생활·경제권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공동노력이 중요합니다. 외부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있는 기업을 제대로 성공시키면 자연히 기업들이 대구경북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경북북부지역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큰 과제입니다.

=특정지역 발전을 위한 실마리는 그 지역의 장점에서 찾아야 합니다. 경북북부지역의 도시들이 다른 도시와 비교할 때 어느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지 아니면 강점을 가질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전략을 짜야 할 것입니다. 도청이전이나 북부지역 도시의 부족한 역량을 대구와 경산 등지에서 보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닫힌 보수성'을 버리는 것이 첫번째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세에 비해 무척 건강해 보이시는데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십니까.

=매일 1~2시간씩 걷기와 가벼운 조깅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독서도 중요한 일과입니다.(김 회장은 1953년 문예지 '협동' 공모에 단편소설 '닭' 당선, 55년 '현대문학'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작가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장편 3편, 중·단편 34편)은 주로 젊은이들이 주인공이었는데, 이제는 노인소설을 한 번 써볼까하고 준비중입니다. 이미 노트 2권 정도 분량으로 생각들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또 주식시장 및 환율의 정상화, 일자리 만들기 등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에 관한 책을 쓰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 김준성 명예회장 약력

▷1920년 대구 출생 ▷대구고보(경북고), 서울대 상대 졸업 ▷대구은행장(초대·1967년) ▷제일은행장(1975년) ▷외환은행장(1977년) ▷한국산업은행 총재(1978년) ▷한국은행 총재(1980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82년) ▷삼성전자 회장(1987년) ▷㈜대우 회장(1988년) ▷이수화학 회장(1995년) ▷현 이수그룹 명예회장(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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