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제도는 2002학년도 이후 다양화·세분화하는 추세다. 수능 점수 하나로 줄을 세우는 서열화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교육부가 심혈을 기울여(?) 수시 모집, 특기자 전형 등을 확대한 덕분이다.
그러나 고교 현장은 교육부의 기대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러 가지 전형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준비하는 다양성의 마당이 아니라'요령과 편법'만 다양화·세분화시키는 '야바위판'이 되고 있다. 신속한 정보 입수, 학교·교사와의 친밀성 등이 더 나은 대학에 가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고교 2학년생 K군은 지난 해 2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고 난 뒤 국어 공부에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다. 학기 내내 열심히 노력했는데 80점을 겨우 넘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행평가 보고서를 쓰느라 이틀 밤을 꼬박 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모둠원들이 빈둥거리는 동안 혼자 인터넷을 뒤지고, 관련 책과 자료를 읽으며 밤새 보고서를 썼는데 자신은 C를 받은 반면 학급 석차가 가장 높은 친구는 A를 받은 것. K군의 어머니는"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채점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과 성적의 30% 안팎을 차지하는 수행평가는 학습의 과정을 중간 중간 점검해 성적에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학생들에게는 골칫거리, 불신 덩어리로 전락한지 오래다. 퀴즈나 쪽지시험처럼 정답이 분명한 경우는 다르지만 수업 관련 조사나 체험 보고서, 프로젝트 결과물 등은 채점의 기준이 불분명하다. 누가 왜 좋은 점수를 받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여럿이 모둠을 이뤄 공동 결과물을 제출해도 과정에 대한 조사없이 임의로 점수가 매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고교 교사는"수업과 업무에 쫓겨 수행평가 결과물은 찬찬히 검토할 시간이 별로 없다."며 교사들에게도 애물단지라고 털어놓았다.
학교 시험의 공정성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상상을 넘는다. 취재 중 만난 고교생들은 "누구나 한 번은 겪는 통과의례 아닌가요?"라며 체념까지 비쳤다. 중간·기말시험이 끝날 때마다"누구는 두 문제 틀리고도 100점을 받았다.","누구는 답안지를 비워뒀는데 선생님이 채워줬다.","누구는 엄마가 학교 찾아아고 난 뒤 점수가 바뀌었단다."는 식의 소문들이 돈다고도 했다.
학교 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피해자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 재수생은"고교 1, 2학년 때 나이가 많은 선생님께 영어를 배웠는데 시험은 매번 다른 반 담당 젊은 선생님이 출제해서 이만저만 손해를 본 게 아니다."며 "재수를 하게 된 것도 내신 몇 점 때문"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봉사활동도 믿기 힘든 사례들이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한 학부모는 "봉사활동 확인서를 얻기 위해 관련 기관이나 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기부금을 내미는 학부모가 적잖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2학년생들이 방학 때 일주일 간 단체 봉사활동을 가는 데 대학의 평가가 좋을 것이라고 판단한 3학년생 몇 명이 끼어 하루만 참가하고는 1주일치 확인서를 받아 온 사례도 들었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대학입시에만 반영되면 편법이 등장하고 변질해 버리는 요지경 교육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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