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이즈음 동해바다는 토박이들의 생업터전에서 외지인들의 놀이터로 역할이 바뀐다.
오징어 가자미같은 생선을 말리기 위해 백사장에 설치해 둔 발도 피서객들의 텐트에 자리를 내주고, 돌미역이나 진저리를 뜯던 갯바위도 낚시꾼이나 수영객의 쉼터가 된다.
놀기로 치면 여름에는 바다가 제격이다. 차양막 아래서 쉬고 있다가 열기가 차오르거나 무료해지면 시원한 물에 몸을 한번 담궜다 말리기를 되풀이하다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후딱이다. 동해에 맞닿았으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해안선을 가졌고, 아무데나 짐을 풀면 편안하게 쉴 수 있으며 풍성한 먹을거리가 있는 포항 앞바다는 그런 점에서 피서지로 최고이 셈이다.
◆보이는 모든 것이 먹을거리=바닷가 음식은 뭐니해도 생선회가 으뜸이다. 더군다나 피서철, 놀러 왔다면 소주 한 잔에 회 한접시 정도는 앞에 둬야 폼도 나는 법이다. 비어기라지만, 그래도 이 시기 포항을 비롯한 동해연안에는 가자미가 한창이다. 양식산이 많은 우럭과 광어는 지천이다. 송라면에서 장기면에 이르는 포항권역은 말할 것도 없고 영덕, 울진, 경주 어디나 마찬가지다. 또 시간 여유가 있고 약간의 사전 지식과 감만 있다면 횟집이나 시장에서 사 먹는 것보다는 직접 낚시질을 해서 자급을 시도하는 것이 훨씬 나은 재미를 준다.
낚시대를 맨 철이른 휴가객들이 몰려드는데서 갯가 사람들은 여름이 왔음을 확인한다. 칠포나 월포, 구룡포 같은 백사장이 넓은 바닷가에 낚시를 드리우면 조사들 사이에서 '바다의 미녀'로 통하는 보리멸이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것도 바로 이 때 부터다. 내륙사람들은 보리멸을 두고 '모래무지'라고 우기기도 한다.
◆'세꼬시 회에 이시가리 한 접시'=여름철 포항산 회는 뼈째로 썰어낸 가자미가 최고다. 가자미는 자연산이다. 활어도 있고 선어(방금 죽어 활어나 마찬가지의 선도를 가진 싱싱한 생선)회도 있다. 포를 뜨지 않고 뼈째로 썰어 먹으면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가히 일품이다. 그래서 구룡포나 죽도시장 등 회요리의 명소를 찾는 많은 이들은 가게 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줌마, 여기 세꼬시 한 접시"를 외치기도 한다.
이번 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 있다. 회요리와 관련된 일본식 표현은 반드시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자는 것. 회요리 문화가 일본에서 더 번창한 탓인지 희한하게도 회와 관련된 결정적인 단어는 일본말을 사용하고 있다. 남여노소가 따로 없다. '사시미'에 '스시'를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것은 정말 고쳐야한다.
'회 박사' 조영제(52·부경대) 교수는 "이유를 달지 말고 무조건 우리말을 쓰자."고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는 일본말이 판치는 횟집에 우리말을 전파하기 위해 지난 한해 동안 주요 용어를 우리말로 고쳐 사진과 함께 소개한 포스터 3천 장을 만들어 횟집에 나눠주기도 했다.
◆이런 것은 고치자=조 교수가 꼬집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습관적으로 쓰는 회 관련 일본말은 대충 이렇다. 사시미(회), 스시(초밥), 오도리(보리새우), 아지(전갱이), 이까(오징어), 스께다시(부요리), 와사비(고추냉이), 아나고(붕장어), 세꼬시(뼈째썰기), 사요리(학꽁치), 하모(갯장어), 다이(돔), 이시다이(돌돔), 마구로(참치) 등등.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횟감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이시가리는 일본 표준어가 '이시가레이'인데도 이조차 틀리게 사용하는데다 우리말 '줄가자미(돌가자미가 아니다)'가 있는데도 굳이 이시가리로 쓰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언어습관이다. 내친 김에 줄가자미(이시가레이) 얘기를 더하면 이렇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최고로 치는 줄가자미는 양식이 안되는 자연산으로 육질이 단단하고 기름기가 많아 쫄깃하게 씹히는 맛과 혀로 느껴지는 맛이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할 절도로 정평난 고급횟감이다. 쌀 때도 ㎏당 가격이 13만∼15만 원대, 비싸면 부르는게 값이어서 서민들은 먹어보겠다는 엄두조차 내기 힘들 정도다. 회 한 점에 5천 원이 넘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보통의 생선감 정도로 고급으로 쳐주지 않고 굴비처럼 소금을 뿌려서 말리는 염건품으로도 먹는다.
조영제 교수는 "성분을 분석해보면 줄가자미와 숭어는 거의 차이가 없고 씹히는 맛도 비슷하다."며 "값을 비교하면 숭어는 줄가자미의 20분의 1정도여서 친한 사람들에게는 이시가레이가 먹고 싶으면 차라리 숭어 먹어라고 권한다."고 했다.
◆회, 어떻게 어디에 찍어 먹을까=회는 가가예문(家家禮文:집집마다 예법이 다름)이라는 말처럼 사람에 따라, 입맛에 따라 먹는 법이나 소스나 쌈 종류도 다르다. 내륙 사람들이 상추나 깻잎을 즐기지만 바닷가 사람들중에는 미역에 싸먹는 사람이 많다. 또 소스도 어떤 사람은 초고추장을 최고로 치고 된장(막장)이나 고추냉이(속칭 와사비)를 최고로 치는 이들도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쌈에 싸지 말고, 초고추장을 멀리하라.'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는 이른바 미식가들이 약간의 이론까지 곁들여 하는 한결같은 충고다. 부경대 연구진이 회 마니아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사람들은 쫄깃하게 씹히는 맛을 즐겨 광어나 가자미 같은 흰살 생선을 좋아하고, 혀 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을 우선하는 일본 사람들은 기름기가 많은 참치같은 붉은살 생선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씹히는 맛이나 혀끝으로 느껴지는 맛이나 쌈을 싸게되면 거의 느끼지 못한다. 쌈을 싸는 것은 회가 부족할 때 배부르게 먹기 위해 동원된 식문화라는게 정설이다.
소스 역시 초고추장은 고추의 강하고 매운 맛이 혀를 마비시켜 생선 특유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고추냉이도 매운 맛을 내지만 혀를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고 짧고 강하게 톡 쏘는 정도여서 소스로 알맞다. 된장의 콩단백질은 비릿하고 느끼한 맛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전어처럼 기름기 많은 생선을 먹을 때는 좋다. '초고추장 맛으로 회 먹는다.'는 소리는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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