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수(水)의 논리, 사(死)의 논리

세상의 모든 것은 위를 향하고 있다. 오랜 돌멩이 위의 작은 이끼, 풀 한포기, 그 옆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다. 담벼락 밑의 개미, 순이네 강아지, 동물원의 호랑이, 하교 길의 어린 초등학생들이 시간을 좇아 조금씩 위로 자라간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허용되는 범위까지 최대한 나를 내세운다. 위로 올려 자신을 세움은 생명의 상징이다.

물은 내려간다. 조금이라도 더 낮은 곳을 향해 단 한 순간도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물의 논리가 시작된다. 흐름은 돌부리를 만나면 찢어진다. 자신을 위해 찢을 뿐이다. 그를 원망하거나 거칠게 훈계하지 않는다. 고도의 전략을 가지고 접근하지도 않는다. 그냥 찢어져 드러난 새하얀 속살로 어루만지고 지나갈 뿐이다. 더 큰 장애물이 나타난다. 물길을 완전히 가로막는다. 흐름은 멈춘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한다. 흐름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아우성도, 힘으로 무너뜨리려는 어떤 시도도 없다. 다만 채워나간다. 그래서 결국에 흘러넘친다. 흐름은 계속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강의 발원지는 산이다. 산은 가장 높은 곳이다. 최초의 물은 어떻게 그곳에 있게 된 것인가? 산의 신비한 힘이 끌어 올린 것인가? 아니면 거꾸로 높은 곳을 향하여 흐르는 물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 또한 내려온 물이다. 모든 것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하늘을 버리고 땅으로 내려온 빗물이다. 교만과 우월의 상징인 산은 빗물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죽음의 논리가 시작된다. 받아들임은 흐름의 생성을 의미하고, 산의 조금씩 무너짐을 의미한다. 교만과 우월은 흐름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산과 물은 흐르는 에너지로 하나가 되어 이르는 곳곳을 생명의 교향악으로 가득 채운다. 찢어짐과 채워 넘침의 소리 없는 자신감은 산이 떼어준 교만의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의 논리는 사랑의 논리요, 생명의 논리다. 생명으로 전이되는 죽음의 논리가 바로 흐름을 시작하게 하는 산의 논리이다.

'천지를 모두 흘러 생명으로 가득 차게 하기 전에는 흐름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면서도,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물이야 말로 늘 우리 곁에 현존하는 사랑의 지장보살이 아닐까

황보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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