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방학이 싫어요"…밥 굶는 아이들 대책 있나?

민교(15·가명·중 3년)는 방학이 되면 도서관으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초교 3년인 동생 민수(9·가명) 때문이다.

부모가 이혼, 엄마없이 사는 민교는 하루종일 택시운전을 하는 아빠를 대신해 방학 때 민수 밥을 챙겨줘야 한다. 동생 민수는 학기중엔 학교급식을 통해 밥을 해결했다. 하지만 학교에 나가지 않으니 방학 때는 '밥'이 없다.

새벽에 집을 나서는 아빠가 밥과 반찬을 챙겨두고 가지만 어린 민수는 굶기 일쑤다. 민교가 밥상을 차리더라도 이들 형제는 툭하면 라면이다. 똑같은 반찬. 밥맛이 없어서란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사는 형제는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방학이 자신들에게는 제일 싫은 기간이라고 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여행객, 국내 주요 관광지 숙박시설도 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올 여름 방학. 화려한 여름방학 한켠에 배고픔에 우는 우리 이웃 아이들이 있다. 학기 중 학교에서 무료급식을 받던 어린이·청소년 상당수가 방학때는 급식지원을 못받게 된 것.

대구의 초·중·고교에서 올 상반기 기준으로 무료급식 혜택을 받는 아이들은 2만 6천여 명선. 하지만 이번 방학기간 중 행정기관 도움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들은 1만여 명 뿐. 무려 1만 6천여 명의 아이들이 방학기간 중 '끼니 공백'에 빠지게 된 것.

책임맡은 행정기관은 "밥 굶는 아이들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난 아이들은 "밥을 챙겨먹느냐."는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와 사는 이모(16) 군. 그는 "학교에서 '형편 어려운 사람 손들어라. 무료급식 혜택 줄께.'라고 공공연히 얘기 하는데 '저 밥 못 먹으니 밥 좀 먹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말하기가 죽기보다 싫다."며 "방학때 밥을 제대로 못 먹은지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그냥 참고 지내면 된다."고 털어놓았다.

대구의 한 동사무소 직원은 "구청에서 '급식지원 재정이 모자란다.'며 갑자기 급식지원대상을 줄이라는 통보가 와 기초생활자 자녀들마저 방학 급식지원 대상에서 빠진 적이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각 구청의 방학중 결식아동 실사가 열흘 동안이라는 짧은 기간에 사회복지 전문공무원 1명이 수백명의 저소득층에 대한 조사에 나서 사실상 제대로된 실사가 불가능하다는 것.

남현주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행정기관은 끊임없이 소외된 계층을 찾아내야하는데 우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할머니와 함께 살거나 아버지 또는 어머니 한쪽과 사는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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