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피서지.' '한여름 눈의 천국.'
일본 중부의 혼슈(本州)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산군인 북알프스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정식이름은 츄부산악국립공원(中部山岳國立公園). 하지만 해발 3천m 이상의 산봉우리가 연이어 져 유럽의 알프스를 닮았다해서 북알프스로 더 잘 알려져있다. 한여름에도 녹지않은 눈이 볼거리. 이 만년설 위에서 텐트를 치고 보낼 요량으로 산행에 나섰다.
관광코스로 잘 알려진 곳은 이곳의 알펜루트. 다테야마와 구로베를 잇는 산악여행루트로 동서로 갈린 해안가의 도야마현(동편)과 산악지방인 나가노현(9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을 동서로 이어준다. 수십m 높이에 이르는 눈을 뚫고 길을 냈다. 로프웨이(케이블카)와 케이블(급경사철로 상 하단의 궤도차를 중력을 이용해 운행하는 방식), 트롤리버스(무궤도·전기)와 관광버스, 그리고 유람선 등이 운송수단.
하지만 단일 산행으로선 기후(岐阜)현 아즈미마을의 가미고지(上高地)를 따를 수 없다. 가미고지는 자연경관으로 따져도 북알프스에서 단연 최고다. 특히 해발 2천m만 넘어서면 여름인데도 많은 눈이 쌓여있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한여름까지 눈이 녹지않고 이만한 높이로 쌓인 것은 일본에서도 20년 만에 처음이란다.
일본 북알프스 등반의 시발점은 가미고지. 가미고지 주차장은 해발 1천500m 고지대다. 우리나라 설악산의 설악동을 연상시키지만 자가용은 철저하게 통제했다. 택시와 관광버스, 셔틀버스만 다니도록 해 경관만큼 공기도 상쾌하다.
자연을 아끼는 일본의 정성은 대단하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은 요코(橫尾)산장. 가미고지에서 요코산장까지의 11킬로미터를 걸어가게 했다. 아주 평탄한 비포장길.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지칠 때쯤이면 산장이 나타나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요코산장까지 가는 길엔 계곡이 볼거리다. 만년설이 녹아내린 계곡물은 비취빛이다. 계곡물도 이렇게 깨끗할 수 있구나 싶다. 이 비경은 산 중턱에서부터 쌓여있는 눈과 어울려 환상적이다. 흐린 날이면 물안개까지 피어올라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요코산장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길도 가팔라지고 험해진다. 중간기착지인 가라사와 산장까지는 6킬로미터. 쉬엄쉬엄가면 네시간이 걸린다. 계곡에 취하고 물소리에 정신이 팔려 2시간30분 정도 오르면 "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탄사를 토해낸다. 눈이다. 해발 2천100m. 이 정도 높이에서 이런 눈 지대를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질 못했다. 계곡 중간중간 쌓여있는 눈을 보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왔지만 이곳에선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가라사와산장까지 오르려면 1시간 정도는 눈밭을 기어올라야 한다. 희한하게도 춥지는 않다. 반팔차림으로 오르는 사람도 있고, 비옷을 입고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뒤쪽으론 구름에 쌓인 산들이 모습을 감췄다 드러냈다 하는 중이다.
가라사와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1시30분쯤. 지금부턴 텐트를 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오쿠호다카다케(3,190m)를 올랐다 내려와야 한다. 빠듯한 시간. 산장 밑에선 눈 고르기가 한창이다. 눈을 깎아내 평지로 만들어 야영장을 만드는 중이다.
서둘러 텐트를 설치했다. 때맞춰 비도 내린다. 나가노(長野)현 산악조난방지대책협회 상주대원인 요시다 히데키(吉田英樹) 씨가 정상을 오르려는 낌새를 알아채고 달려왔다. 시간도 늦었고 기후도 좋지않기 때문에 정상을 오르기는 무리라는 설명. 정상에도 산장이 있지만 돌아오기엔 늦다고 설득한다. 일행 중 일부만 다녀오기로 하고 나머진 가라사와다케(3,103m)로 향했다.
캠프장에서 까마득하게 정상을 향해 눈밭이 이어져있다. 한눈에 눈사태가 난 지역이라는 걸 실감할 만한 눈밭 가장자리로 눈계단을 만들어뒀다. 눈계단은 정상을 향해 끝없이 이어져있다. 한발한발 눈계단을 오르며 돌아보면 저 멀리 발아래로 캠프장이 손가락만하게 보인다. 1시간이나 올랐지만 여전히 그 자리다. 구름이 앞길을 막는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이다. 되돌아서야 했다. 행여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큰 일.
대구에서 인천공항으로, 인천공항에서 일본 나고야로, 나고야에서 관광버스로 4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셈치고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밤새 텐트를 붙잡고 비바람과 시름하며 밤을 새워야 했다. 다음날 게슴츠레한 눈으로 서둘러 철수했다. 너무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 원래 계획은 마에호다카다케와 다케사와를 거쳐 가미고지로 하산하려 했으나 등산로가 폐쇄됐다고 했다. 역시 날씨 탓이었다. 어쩔 수 없이 빗속에 올랐던 길을 따라 하산했다.
그래도 20년만에 처음이라는 한여름 설경은 짜릿했다.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연상시키는 가라사와산장 부근의 풍경을 가슴에 담고 온 것만으로 아쉽지않은 산행이다.
가미고지(일본)에서 글.사진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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