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해함과 좋아함

예술을 학문과 대비시킬 때 예술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학문(Logos)이란 이성을 바탕으로 한 이해함과 관계있다. 이는 감성의 작용과는 거리가 먼 대뇌의 활동이다. 학문이란 논리적, 과학적, 객관적인 성격을 가지며 무엇을(What)과 왜(Why)가 중요시 된다.

예술(Art)이란 감성을 바탕으로 한 좋아함과 관계있다. 이는 이성의 작용보다는 가슴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이란 공상적, 비합리적, 비현실적, 주관적 성격을 가지며 무엇을, 왜는 중요치 않다. 예컨대 장미꽃을 좋아한다 또는 호박꽃을 좋아한다는 그 자체로 끝나며 '왜 좋아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왜'를 답하려 할 때는 이미 이성이 강조된 학문적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을 학문과 비교할 때 학문은 이해함과 예술은 좋아함과 관계 된다.

좋아함이란 무엇인가? 좋아한다는 것은 주관적이며, 가변적이고, 감정미학이 기초가 된다. 우리의 취미나 흥미, 재능, 인격과 관계있는 좋아함은 분석되는 것이 아니며 유기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종합적인 것이다. 예컨대 손이 좋다고 할 때 그 손은 사랑하거나 친근한 사람 또는 존경하는 사람의 따뜻한 손일 것이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진정한 예술가는 적어지는 듯하다. 교육, 경제, 정치 등의 외적 요인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로는 예술가 자신의 내적 요인으로 좋아함 보다는 이해함의 태도가 많아지고 유기적인 예술적 입장보다는 분석적인 학문적 입장에 서려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음악작품을 예로 들어봐도 음악의 중요한 요소인 화성은 하나의 음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최소한 두개의 음이 있어야 하나의 음이 그 성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즉 음악예술은 유기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데 현대의 음악인들은 분석하고 지나치게 세분화되는 것을 원하니 이는 예술가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학문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학자와 같이 이율배반적이다. 장미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결코 분석의 결과가 아니고 유기적이며 종합적인 결과이다.

좋아함은 이해함보다 인간의 본성에 보다 더 밀착되어 있다. 어릴 때의 본능이나 의복, 자동차, 집 등의 선택과 사용에서 좋아함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좋아한다는 것은 쾌의 감정이다. 쾌의 느낌은 바로 아름다움이다. 결국 이해함 보다는 좋아함에 의한 삶이 우리 생활을 더 따뜻하고 윤택케 해주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영기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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