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성희롱

대한민국 남자 셋만 모이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다름 아닌 군대 이야기. 건강한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와야 하는 통과의례지만 온갖 무용담'고생담이 쏟아진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이내 흉허물 없이 가까워진다. 남자들 이 가장 즐겨하는 대화 소재인 '軍(군)의 추억'을 그러나 여자들은 대체로 싫어한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자들은 모르겠지만…" 식으로 남자들이 장황하게 說(설)을 풀기 시작하면 여자들은 심드렁한 표정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군대 이야기조차 너무 자주 한다거나 하면 큰코다칠 수도 있다. 적어도 대학 캠퍼스에서는 말이다. 교육부와 대학교육협의회가 19일 대구에서 대학 성희롱 고충 상담소 상담원 등을 대상으로 가진 교육에서 대학 내 성희롱 발언 사례들이 발표됐는데 이런 류의 말들도 성희롱 사례로 지적된 것이다.

○…사례집에는 여대생들이 꼽은 교수 및 남학생들에 의한 성희롱 백태가 실려 있다. 대개는 性的(성적)'여성비하적 발언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도 시집가면 쓸데없지", "여자가 많으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외모도 수준 이상인데 한 번 발표해 봐", "너무 짧은 스커트 입지 말고, 진한 화장 하지 말고…", "향수 작작 써라"…. 또 남학생들의 강제적인 춤 요구나 여성의 몸을 빗댄 '절벽' 운운 등의 농담 들도 지적됐다.

○…특히 교수의 성희롱 사례 중엔 "쭉쭉빵빵"이니 "방뎅이가…" 등의 노골적인 것들이 있는가 하면 학생의 지나친 노출 패션 등에 대해 어버이의 심정으로 염려한 말들도 있다. 그러나 성희롱 의도도 없고, 상습적이지 않은 일회성의 언행이라도 상대방이 성희롱으로 느낀다면 성희롱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다.

○…대학 내 성희롱 문제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일반 사회보다 폐쇄적이고 봉건적이기까지 한 특성을 지닌 대학의 역학구조가 이 같은 분위기를 키워 왔다. 이번 사례집은 노골적인 성희롱뿐 아니라 상대방이 수치감이나 모욕감을 느낄 만한 말들은 삼가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우리가 심심파적으로 던지는 돌멩이 하나가 연못 안 개구리에겐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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