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집)파티마병원 의료봉사단 캄보디아를 가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가 외국의 의료지원을 많이 받은데 대한 보답으로 최근들어 대구지역 의료기관들이 이제는 가난한 이웃나라 돕기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대구파티마병원 의료진들이 지난 15일부터 일주간 캄보디아 바탐방시를 찾아 의료봉사 활동을 벌였다. 매일신문 사회1부 정욱진 기자가 이에 동행, 현지 봉사활동을 취재했다.

여섯 살 캄보디아 소녀 치아 소펜에게 산다는 것은 생존과의 싸움이다. 하루 두 끼 식사조차 버거운 집안 형편도 그렇지만 에이즈, 말라리아, 뎅기열 등 호시탐탐 어린 생명을 노리는 '악마'들과 함께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캄보디아 바탐방에서 만난 소펜은 까만 눈동자에 온 마음이 빨려들 것처럼 예쁜 얼굴이었다. 하지만 쉴새없이 기침을 했고, 금세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였다. 한국 무료진료소까지 1시간이나 넘는 거리를 엄마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려 온 탓이기도 하지만 눈으로도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아이는 심장 판막질환을 앓고 있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 하지만 한국에서 날라온 의료봉사단의 힘으로도 수술은 불가능했다. 자신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지 의사의 대답을 기다리는 큰 눈망울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현지 병원에 소견서를 써줄 테니 수술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한국인 의사는 거듭 재촉했지만 아이의 엄마는 의외로 냉담했다. 아동 무료병원이 있는 곳까지는 버스로 비포장도로를 6시간 가야 하고, 인근 병원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는 것.

1달러로 7명의 식구가 하루를 살아간다는 캄보디아 사람들. 한번 진료 보는데 기본 5달러를 내야 하는 현지 병원은 구경조차 할 수 없을 터이다. 게다가 가장이 아파 돈을 벌 수 없게 되면 자식들을 판 돈으로 치료비를 대신하는 경우도 적잖다는 얘기에 더 놀라웠다.

이 때문인지 진료소 문을 나서는 엄마의 담담한 표정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내비쳤다. "아이가 왜 아픈지 병명이라도 알게 됐고, 또 평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료를 받았으니 여한이 없네요." 그러면서도 엄마는 연신 고개만 숙였다.

대구파티마병원 해외의료봉사단(단장 최상용) 12명의 의료진이 캄보디아 바탐방에 무료진료소를 차린 것은 지난 10일. 첫 날부터 500여 명의 주민이 밀려 들어왔다. 현지의 높은 의료비용 때문에 대부분 병원 구경이 처음인지라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온 의료진은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었다.

짜리야(12·여)에게도 병원은 난생 처음이다. 외지인이 준 선물을 받아들고 기뻐 조잘조잘대는 아이들 틈에서 짜리야는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부모 대신 네 명의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소녀가장 짜리야. 한 달째 목이 아파 일을 하는데 지장이 생겨 두 시간을 달려왔다고 했다.

흑보석 같은 눈을 가진 어린 짜리야는 열살 때 부모가 모두 병으로 사망하고 생활전선에 내몰렸다. 시장에 과일을 내다 팔고, 옷감을 짜 다섯 식구를 책임지고 있는 아이. "내가 아프면 동생들이 당장 어려움에 처한다."며 눈물짓는 짜리야는 "목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그제야 희망이 송글송글 맺혔다.

진료를 한 신종헌 이비인후과 과장은 "중이염을 그대로 방치한 나머지 피부를 다 녹여 고름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놀랐다."며 "제때 수술하면 완치가 가능한 병인데도 이곳은 난치병으로 살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혀를 찼다.

내과, 신경정신과, 안과, 치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등 6개과 의사들은 캄보디아인 통역의 도움을 받아 진료를 했으나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루 500여 명의 환자들이 이어지면서 이곳 무료진료소는 야전병원을 방불했다.

국경을 넘어 인술(仁術)을 펼치려 온 의료진들은 캄보디아의 열악한 의료서비스 사정을 절감하며 장사진을 친 환자들 틈에서 쉼없이 진료에 매달렸다. 하루 8, 9시간 동안 화장실 갈 틈조차 없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 의료진이 온다는 소문에 3, 4시간을 오토바이를 타거나 걸어서 온 환자들도 있었다. 끝없이 밀려드는 환자 행렬에 준비해간 1천500명 분의 약품이 사흘 만에 동이 났다. 장혜자 간호팀장은 "충분할 정도의 약을 준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치료에 한계를 드러내는 경우도 적잖았다. 고가의 운송비 탓에 수술장비를 챙겨 올 수 없었던 것. 때문에 수술이 절실한 많은 환자들을 돌려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박대진 안과 전문의는 "안과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이 백내장 환자였다."며 "간단한 수술만 하면 당장 눈을 뜰 수 있을 텐데 평생 맹인으로 살아야 하다니..."라며 안타까워 했다.

때문에 일회성의 의료 봉사단 파견보다 그 경비를 모아 이 곳처럼 의료사정이 열악한 곳에 의료장비를 갖춘 진료소를 세워 의사들을 파견하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라는 얘기가 의료진 사이에서 나왔다.

봉사단 김성호 내과 과장은 "3년 전 몽골에서의 진료 때도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에 낙담했었는데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며 "도움이 절실한 곳에 진료소를 차리고 꾸준히 의료장비를 갖춘 뒤 의료진을 파견하면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흘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몇 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 봉사였다. 매일 아침 일찍 진료소에 나와 봉사단을 마중한 캄보디아 소년 껌 롱(7)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땡큐, 땡큐, 아이 라이크 대~한민국."

캄보디아 바탐방에서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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