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전 경제인 A씨와 식사를 하는데 문득 그 분이 재밌는 얘기를 끄집어냈다.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였던 김범일씨에 대한 인물 평이었다.
"김 후보는 조해녕 시장의 절반이고, 조 시장은 문희갑 전 시장의 절반이다." 비중과 함량 면에서 차이가 난다는 그런 얘기였다.
물론 그 분의 개인적인 느낌이 아니고 경제계에서 나도는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그후 김범일 시장이 취임하고 나서도 비슷한 뉘앙스의 얘기를 사석에서 두어번 더 들었다. 그 우스개를 접할 때 마다 의욕적으로 새 출발하는 시장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히 거기에는 대구 사람의 氣質(기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사례를 통해 대구사람의 기질을 한번 짚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 우스개에는 먼저 겉보기를 중시하는 대구사람 특유의 평가 잣대가 숨어있다. 벼슬의 크기가 그 사람에 대한 평가 자체를 좌우하고 있는 듯 하다. 김시장은 차관급인 산림청장 출신이니 내무부장관 출신의 조 전시장이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문 전시장과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에다 多血質(다혈질)의 문 전시장이나 신중한 조 전시장에 비해 발걸음이 빠른 김 시장은 아무래도 중량감이 떨어지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철학이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맨 나중에 고려될 사안일 뿐이다.
둘째는 뒤에 숨어서 남 비판하길 좋아하고 무엇이든 일단 否定的(부정적)으로 보고 난후 일을 벌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상당수가 익명의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을 씹어 돌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검찰 관계자들은 대구에 부임하면 멀쩡한 사람을 헐뜯는 巫告性(무고성) 민원이 쏟아지는데 맨먼저 놀라게 된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이름을 밝히고 정정당당하게 고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편지 겉봉에 '선량한 시민' '정의를 사랑하는 시민' 따위의 명칭을 쓴다고 한다. 젊은 사람도 기성세대를 닮은 듯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을 욕하는데 대구 출신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렇게 생채기가 난 사람들이 '다시는 대구(혹은 자신이 속했던 조직)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겠다'며 떠나가는 장면을 심심찮게 봐왔다.
셋째는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아예 없거나 그다지 높지않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대구사람은 안돼" "XX출신 때문에 망했어." "우리 회사(조직)는 오래 못가." 술자리 같은 데서 참석자들이 서로 자기 卑下(비하)를 하느라 바쁘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쟁적으로 자기 고백에 열을 올리는게 흔한 풍경이다.
대구사람들은 자기가 속해있는 조직을 욕하고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겨야만 정신적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대구에서 살아 남으면 어디가든 성공할 수 있다'고 했을까. 모양새가 좋지 않은 부문에서는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정말 '大邱病(대구병)'이다. 예전부터 대구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과 가족애, 정치권력 등 여러 환경 가운데 정작 필요한 것은 쏙 빠지고 부정적인 요소만 남아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게 아닐까.
요즘 경제살리기가 화두다. 경제는 개방적인 사고와 역동적인 문화에서 나온다. '먹고 살자'는 구호보다는 우리들의 의식을 고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부터 자그마한 것이라도 동료나 상사를 칭찬하고 자신의 共同體(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보는게 어떻까. 그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이를 하나씩 실천하다 보면 대구사람도 살고 결국은 경제도 산다.
매일신문사는 지난 7일 창간 60주년기념으로 대구지역 리딩그룹 211명에 대한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 Analysis)조사를 했다. 당초의 先入見(선입견)과는 달리 상당수 엘리트 그룹은 대구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지역의 발전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특히 40, 50대 그룹은 강하고도 빠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희망의 단초를 봤다. 대구도 살아남을 길이 있는 모양이다. 그다지 머지 않은 시기에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섣부른 바람일까.
박병선 기획탐사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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