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움의 美…마음을 채우고 푸냐? 먼저 비워라!

봄꽃이든, 여름꽃이든 여유를 가지고 꽃향기를 맡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바쁘고 복잡하게 살아가다 보니 하고 싶고, 갖고 싶은 욕구가 커져 집착이 됐다. 이젠 집착을 덜어낼 때다. 버려야 새로운 것도 채울 수 있는 법. 단조롭게 살면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등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며 뺄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백복윤(48·대구시 중구 청사관리팀장) 씨는 올 여름휴가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보냈다. 4박5일간 절에서 하는 여름수련법회 '참 나를 찾아서'에 참가, 마음을 수양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송광사 사자루에서 힘겹게 백 씨를 만났다. 그는 일절 말을 하지 않는 묵언(默言)수행 중이었다. 그는 "조용한 산사에서 말없이 수행하고 정진하니 세상 욕심, 번뇌가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다."며 취재수첩에다 글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해줬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마음을 비우고 사는 사람 1순위로 평가되는 백 씨는 "복잡한 생각을 비우면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며 "승진, 재산 등 세상 욕심이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라고 했다. 백 씨는 가끔 가족들과 함께 산사에서 맨발로 숲 길을 조용히 걷기도 한다. 이들에겐 이 시간이 가장 여유롭고 행복하다.

'남산동 딸깍발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윤원돌(61) 씨. 대구시 중구 남산동 향교 근처에서 20여 년간 책과 함께 살아온 그는 지난달 경북 영천시 삼부동 한 숲속으로 거처를 옮겼다.

남산동에서 살 당시 3평 남짓한 그의 다락방에는 붓글씨로 쓴 한지와 동양화, 사서삼경 등 각종 경서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젊어서부터 '배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직장을 가지지않고 다락방에서 붓글씨와 경전공부에만 매달려왔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주례와 교양강좌 등을 통해 봉사의 길로 나서기도 했지만 이 역시 무료였다. '무소유' 인생의 그가 '배움'을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천으로 옮겨간 그는 "노후의 삶 역시 숲 속에서 조용히 맘을 비우고 사색하면서 배우고 또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밝혔다.

윤원돌 씨는 지난달 이사할 때 옮긴 물건이 책과 옷 몇 벌 뿐이었다. 3평 남짓한 다락방에 살다 보니 짐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그나마 필요없는 물건은 다 버렸기 때문. "가지고자 하는 욕심보다 없는 어려움을 벗삼아 마음을 정결히 하고 사는 것이 정신을 맑게 해줍니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물질적 넉넉함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를 즐겨라.'고 가르친다.

권대용(55·대구시 환경녹지국장) 씨 역시 검소하게 살면서 인생을 풍요롭게 살고자 노력한다. 고위 공직자임에도 20평대 시영아파트에 15년간 살다가 지난해 새 아파트를 마련해 이사했을 정도. 이사갈 때도 살림에 필요한 물건 외에는 대부분 버렸다. 권 씨는 주변에서 문화 마니아라 부를 정도로 삶을 즐기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은 가지기 위한 것보다 충분히 즐기고 누리기 위한 것.'이라는 개인적 삶의 철학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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