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배 시인은 '자식 키우기는 농사짓는 것과 같다.'고 했다. 때 맞춰 씨를 뿌리고 적당량의 빛과 물을 주어야 하고 적기에 수확을 해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일 년 농사는 헛것이 되고 마는, 힘 드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 일곱 살 난 막내가 제 형한테 "혹시 어머니가 계모 아니냐?"고 묻더란다. 갑작스레 엉뚱한 질문을 받은 맏이도 순간, 무언가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면서 '계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휙 스쳤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맏이가 3학년 때 태어난 막내는 안동의 이모 집에서 두 돌을 보내다 이모가 이민 가는 바람에 다섯 살까지는 성서의 큰엄마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우리 집에 온 지는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다.
맏이가 생각해도 얼마 전에 어디서 데려온 동생으로 착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난데없는 동생의 질문에 "어머니가 왜 계모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니 '헨젤과 그레텔'의 동화책을 읽었는데 "어머니가 그 계모 같다."고 답변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3의 맏이는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계시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동생들은 제가 겪은 그 질긴 외로움을 맛보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마냥 어린아이인 줄 알았던 중3의 아들 녀석이 '외로웠다'니? 또 배 아파 낳은 생모더러 '계모'라니? 그날 밤 나는 밤새 두통으로 앓았었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날들 속에서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채 그저 거품만 보글보글 끓었다.
그래,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씨만 뿌려 놓은 채 삯꾼을 사서 또는 일꾼한테 맡긴 채 큰 수확만 기다렸다. 나의 이른 출근시간 때문에 잠에서 덜 깬 막내를 아침도 먹이지 못하고 빵 한 조각 가방에 담아 어린이집에 밀어넣었다.
맏이에게도 그랬다. 일찍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전전긍긍하다 집에 돌아오게 했다. 어쩌다 직장의 회식이라도 있으면 일하는 아주머니께 저녁을 부탁하기도 했다. 둘째도 마찬가지다.
운동회 날, 엄마와 손잡고 하는 무용이 있었지만 '친구 엄마가 대신 손잡아 주었다.'며 울었고, 학교의 학부모 행사 때는 혹시 '엄마가 오셨는가' 열두 번도 더 돌아봐서 목이 아프다고 했었다.나는 그 모든 것이 이 시대 어린 아이들이 다 겪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었다.
결국 가슴이 찢어진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온 탕아처럼 아이들 품에 안기고 말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현대판 '계모'를 용서해 주었고, 집 나간 엄마가 돌아온 것처럼 제 친구들에게 막 자랑한다. "우리 엄마 집에 계신다."
얼굴에 생기가 도는 아이들을 보고 나는 감히 말한다. '행복은 손톱만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제 나는 내가 농사를 지으련다. 손수 논 갈고 밭 갈면서.
다만 숲속이 아니었을 뿐, 아이들을 버리듯이 할 수밖에 없는, 엄마를 필요로 하는 요소들이 많은 오늘날, 누가 힘든 농사를 지으려 할 것인가? 이런 현대판 '계모'들이 자기 일을 고집하는 한, 제 때 맞춰 농사짓는 일은 성가시기 마련이다.
제대로 된 농사를 짓지 못 할 바엔 아예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이 오늘날 출산율을 낮추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아무도 '헨젤과 그레텔'을 낳지 않으려 한다는 걸 이제 알다.
문차숙(시인)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