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괴물' 주연 배두나 '숙제 끝낸 느낌'

흥행작 한 편 없다(사실 데뷔작 '링' 딱 한 편 있다). 전형적인 미인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그뿐이랴.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한국의 작가주의 감독들은 모두 그를 원한다.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배우 배두나(27)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에 관한 '공식'이 하나 깨질 듯하다. 27일 개봉하는 그의 10번째 영화 '괴물'(감독 봉준호, 제작 청어람)이 여름 극장가에 태풍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시사회에서 송강호가 "개인적으로 배두나의 필모그래피 중 초대박 영화가 드디어 이번에 나오게 돼 기쁘기 한량없다."고 말했을까. 사전제작드라마 '썸데이' 촬영으로 바쁜 그를 어렵사리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작품도 아닌 '괴물'을 찍어놓고 홍보활동을 하지 않는(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것 역시 배두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봉 감독을 믿고 2년 기다려

사실 그의 필모그래피에 히트작이 없는 것이야말로 배우 배두나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그만큼 그의 이미지가 독특하다는 증거이고 그의 세상과 작품에 대한 시선 역시 평범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괴물'의 촬영을 2년여 기다린 것 역시 이 작품이 블록버스터여서가 아니다. '플란다스의 개'로 인연을 맺은 봉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괴물'이 그에게 갖는 의미를 묻는 질문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선뜻 말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제작보고회 때 그렇게 대답하자 취재진들이 막 웃었어요. 그래서 내가 뭔가 잘못 대답했구나 느꼈죠. 하지만 그게 진심이었어요. 오해의 소지가 다소 있긴 하지만, 배우에게 있어서 영화는 다 똑같은 의미잖아요. 언제나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다 같은 정도의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그런 뜻에서 대답한 거죠. '괴물'은 특별하고 전작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뜻이었어요."

그는 '괴물'에 대해 "숙제를 끝낸 느낌"이라고 말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고 고생해서 그런지 뭔가 허탈하기도 한데 여하튼 숙제를 끝낸 것 같아요. 봉 감독님이 '괴물' 이야기를 꺼내신 게 2004년이었거든요. 금방 촬영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 사이 연극, 일본영화, 드라마를 차례로 한 편씩 했어요. 시나리오를 보여주신 게 2005년 초였죠. 왜 기다렸느냐고요? '괴물'을 안 하고 싶지 않았고, '괴물'보다 나은 작품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봉 감독님이 만드는 괴수영화는 대단히 한국적일 것이고 뭔가 다를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죠."

▲고소공포증, 어깨 통증 이겨내며 촬영

배두나는 이 영화에서 양궁선수다. 실력은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활 시위를 당기지 못하는 5% 부족한 선수. 이 극중 직업을 포함해 그는 '괴물'을 촬영하며 여배우로서는 꽤 고생을 했다. 내내 얼굴에 숯검정 분장을 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자기 어깨가 뚱뚱해져 가면서 양궁선수가 되고픈 여배우는 없을 거에요. 활이 얼마나 무거운 줄 아세요? 강호 오빠나 해일이 오빠도 들기만 했지 시위를 당기지는 못했어요. 연습 석 달 하고 촬영 6개월 하면서 침, 스포츠 마사지, 반신욕 등 안 한 게 없어요. 근육이 뭉치고 관절이 아프고…. 제가 운동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마인드 컨트롤하며 버텼어요. 양궁은 얼굴이 잡히니까 대역을 쓸 수 없는 종목이거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양궁 선생님이 저보고 소질 있대요.(웃음)" 그뿐 아니다. 그는 괴물에 납치된 조카를 구하기 위해 성산대교 교각을 뛰어다니고, 그 안에서 잠들다 깨어나기도 한다. "저 고소공포증 있어요. 그런데도 대역 없이 다 제가 했어요. 성산대교에 달려있는 사다리를 타고 교각으로 내려가 엉금엉금 기어다녔어요. 차가 지나가면 다리가 얼마나 흔들리는데요. 정말 무서웠어요. 화면에는 제가 씩씩하게 걷고 뛰어가는 뒷모습이 잡히는데, 사실 얼굴에서는 무서워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어요.(웃음)"

며칠 밤낮으로 한강물에 몸을 푹 담그고 있기도 했다. "한강물에 들어가는 신이 단 두 컷이었는데 며칠간 밤새며 촬영했어요. 정말 찝찝하더라고요. 하지만 촬영 전 파상풍 주사도 맞았고, 현장에 샤워장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네다섯 번씩 씻어서 탈은 안 났어요." '괴물'의 촬영이 끝난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그의 어깨 통증은 가시지 않고 있다. 활을 놓은 대신 카메라를 들었기 때문. 그는 이달 말 출간하는 포토 에세이집 '두나's 런던놀이'를 통해 사진작가로 데뷔한다. 물론 본인은 '사진작가'라는 표현을 부담스러워 하겠지만, 흔한 한류 스타들의 포토 에세이집과 달리 그는 모델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찍은 여행 사진들로 책을 꾸몄다. 분명 눈에 띄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뭐 하나에 집착하면 왜 그렇게 파고드는지 모르겠다."며 웃은 그는 "드라마 끝내고 또 빨리 사진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 '괴물'을 찍은 후의 포부나 계획을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괴물'은 이미 지나간 과거인 것. 주류, 혹은 대세와는 다른 주파수를 맞추고 사는 이 배우의 내일이 궁금해지는 것 역시 바로 그 때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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