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름날의 겨울예술] ②영화 철도원

히뿌연 눈보라 사이를 달려오는 기차를 바라보며 플랫폼에는 낡은 철도원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눈물을 대신해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깃발을 흔들며, 호각을 분다.

시골 간이역의 역장 사토 오토마츠(오토). 아내가 죽은 날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죽은 날도 그는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고 또 기차를 보내면서. 하지만 그가 역을 지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역은 이용객이 없어 폐지가 결정됐고, 그도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눈이 내리면, 그는 고개를 들어 눈송이를 쏟아내는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완행열차는 훗카이도 산길을 달려간다.

17년 전 겨울 어느 날. 철도 위에서 열차를 점거하고 있는 오토에게 우윳빛 고운 얼굴의 아내 시즈에는 아기를 가졌다며 달려와 어깨에 안긴다. 오토와 시즈는 태어난 딸에게 '눈의 아이'라는 뜻의 유키코란 이름을 지어준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유키코가 태어난 지 두 달쯤 된 어느 날, 열병으로 아이는 그들의 곁을 떠난다. 아내도 머지 않아 딸아이의 뒤를 따른다.

아내와 딸아이마저 기적 소리 너머로 묻어 버린 채 묵묵히 철도원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 날 죽은 딸과 이름이 같은 소녀가 나타난다. 인형을 안고 천진스레 웃으며 다가온 소녀는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영화 '철도원'은 하얀 영화다. 스크린은 눈으로 물들어 눈부실 정도다. 역 지붕은 눈썹처럼 눈이 수북하고 철도원의 까만 제복 아래로는 끊임없이 눈송이가 떨어진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호로마이 역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소문난 훗카이도 중부 이쿠도라 역을 모델로 삼았다. 이쿠도라 역의 한쪽 편을 세트장으로 개조해 가상의 역을 세워 촬영했는데 지금도 호로마이 역을 비롯해 빨간 우체통, 나무벽 등은 영화 속 장면과 똑같아 보존되고 있다. 훗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서 1960년 대 일본의 생활상을 엿보게 하는 '철도원'은 일본 문단에서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손꼽히는 밀리언셀러 작가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1999년 일본에서 상영돼 그해 일본 아카데미 9개 부문을 석권했고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도 했다. 눈물을 가슴 속에 채워두는 오토 역의 다카쿠라 켄은 처연히 내리는 눈과 어울려 짙은 그리움의 아우라를 그려낸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