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사람은 많아도 사람이 없다

사람은 많아도 사람이 없다

배 영 순(영남대 교수/국사학)

'자리'연연하되 '일'엔 무관심

구직자는 '일의 철학' 세워라

졸업이 실업이 되는 시절, 청년실업자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수십 명을 뽑는데도 수천, 수만 명씩 몰린다. 이렇듯 일자리는 부족하고 사람은 많다. 분명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은 많아도 사람이 없다. (일)자리에 뜻을 두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일'에 뜻을 두는 사람은 없다.

공무원 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은 많아도 공무(公務)에 뜻을 두는 사람이 없고 교직 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많아도 교사에 뜻을 두는 사람이 없고 의사의 안정된 수입을 쫓아 의대를 가는 사람은 많아도 의사에 뜻을 두는 사람이 없다.

현장에서도 '사람이 없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신의 호구지책을 마련하고 입신출세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욕심만 앞서 있지 정작 그 회사에 들어와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자신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발휘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 그 대부분은 일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취업준비를 보아도 그렇다. (일)자리에 머리를 싸매고 전전긍긍하지만 자신이 무슨 일에 인생의 승부를 걸 것인지, 그 일에 대해서 철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일, 자신의 일생을 걸고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일, 그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일에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에 승부를 건다. 그러니 다들 일자리를 찾지만 일에 뜻을 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자리를 지키기 위한 일에 급급한데 무슨 일이 되겠는가? 정작 일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내일이 있고 희망이 있겠는가? 중이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뜻을 두는데 어떻게 옳은 염불이 되겠는가?

어느 게임 산업체의 채용시험, 면접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면접관이 최근 유행하는 게임은 어떤 것들이며 어떤 게임을 제일 잘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입사지망생은 게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게임 업체에 취업을 하자는 사람이 게임에 대해서 하는 바가 전혀 없었다. 또 게임산업의 트렌드나 시장규모와 그 전망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뭐든지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야 일단 회사에 들어가고 보자는 심산에서 하는 소리인데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일을 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자리 때문에 온 사람을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취업마인드와 일의 철학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독자들 중에는 '먹고 살기 급한 판에 한가하게 무슨 철학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힐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자. 정말 일에 뜻이 서고 일에 미치고 일에 살다가 일에 죽을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오지 않을까?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경제난을 말하지만 세상은 그런 사람을 더욱 갈구할 것이다. 자리를 찾는 사람과 일을 찾는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취업준비 자세부터 다를 것이고 일자리에 나아가서도 다를 것이다. 그것이 프로와 아마의 차이 아닐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가파른 시절이다. 무너질 것은 무너지고 사라질 것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시절은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겠는가? 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남을까 그렇지 않으면 일 같지 않은 사람이 남겠는가? 그렇다면 취업마인드(=일의 철학)라는 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경쟁력 아니겠는가? 나아가서 그 사람의 생명력이 아닐까?

배영순 (영남대 교수, 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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