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듯 어린이가 성인보다 외국어를 더 잘 배우는가?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 답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다. 발음 학습에서는 어린이가 유리하지만 문법이나 어휘 학습에서는 성인이 유리하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상황에서는 어린이가 더 잘 배우지만 의식적인 학습 상황에서는 성인이 더 잘 배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외국어를 접하는 시간과 양이 일정할 경우 나이 많은 학습자가 어린 아동보다 더 높은 숙달 정도를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 시절이 외국어를 배우는데 최적의 시기라든가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언어 습득 장치(Language Acquisition Device: LAD)가 쇠퇴하여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거나 하는 주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 외국어를 배우는데 최적의 시기는 아닐지라도 좋은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어린이는 성인보다 더 오랫동안 외국어를 배우게 되고, 그 결과 궁극적으로 더 잘 배우게 된다. 현실적으로 어린이는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학생으로서 지속적이고 규칙적으로 배우게 되지만 성인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린이 영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적어도 세 가지 요소, 즉 학습자의 특성, 목표어인 영어의 특성,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학습 상황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의 발달 특성 가운데 영어 학습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전체적인 맥락이나 상황 속에서 말의 의미를 스스로 파악하는 능력이 크다.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상황이나 놀이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간접 학습의 능력이 크다. △한 가지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또래와 같이 활동하고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이러한 특성을 비교적 잘 활용한 학습 활동이 그림 동화책 읽기이다. 아주 어린 아이에게 영어로 된 그림 동화책을 상당 기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림을 짚어 가면서 읽어 주다 보면 어느 시기부터인가 어린이는 해당 페이지를 다 듣고 나서 스스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나 어린이의 주의 집중 시간이 짧고 활동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런 활동도 한 번에 15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표어의 특성 또한 어린이 영어 학습의 중요한 요소이다. 영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다르고, 리듬이 다르다. 어순이 다르다는 것은 사고의 순서, 즉 사고의 양식이 다름을 의미하고, 사고 양식의 차이는 영어를 배우는 한국 사람에게 커다란 어려움을 야기한다. 어린이 학습자들의 경우 사고 양식에서 비롯된 어순의 차이는 반복 학습을 통해 그들 스스로 체험하고 내재화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영어의 리듬을 익히는데 도움을 주는 활동은 노래와 챈트이다. 노래와 챈트는 일상적인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언어의 운율적 특성을 익히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 밖에도 노래와 챈트는 정서적인 이완 작용을 해 학습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동기 유발적인 효과를 갖는다. 또한 노랫말은 일상적인 구어 표현보다 우리 마음에 더 깊이 내재화된다고 한다.
어린이 영어 교육에서는 학습 상황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고려 사항이다. 영어를 가장 잘 배우는 길은 영어 사용 국가에 가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내의 어린이들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기 때문에 영어 입력과 상호 작용이 부족하고 또한 학습 동기 유발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적 제약을 부분적으로나마 극복하는 데는 주변에 있는 성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교사가, 가정에서는 어머니가 제대로 도와줄 수 있다면 학습자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수업 진행 시 학습자가 지나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입력과 상호 작용의 양을 늘리고 동기를 유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정의 일상 생활에서 간단한 대화를 영어로 하도록 유도하거나 혹은 어린이가 교재에서 배운 표현을 어머니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실제로 활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영숙(대구교대 교수)
※이 글은 한국영어교육연구회와 대구작가콜로퀴엄이 지난 24일 진행한 월요시민영어강좌 '아동 영어교육,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다음 특강은 31일 오후 7시부터 대구 교보문고 10층 강당에서 전병만 한국영어교육학회 회장이 '수능 영어 만점이 보인다'를 주제로 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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