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장맛비에 욕심을 씻어버리자

장마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무더위 기승에 또는 삶의 피로에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떠날 것이다. 어쩌면 여행길에 수마가 스치고 간 현장에서 구슬땀 범벅이 된 자원봉사자와 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재민은 하루 빨리 그늘진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야 하겠고, 삶에 지친 여행객들은 에너지를 재충전해 일상에 복귀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까지를 상식적인 사회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계곡과 해수욕장에서 혹은 외국에서 자기 쓰레기 하나 책임지지 못할 만큼 무책임하다면 이는 사정이 달라진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어야 청소용역이 유지되는 거라며 우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궤변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사람일수록 자기 손해는 손톱만큼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기적인 개인주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상당 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부끄럽지만 인정하자.

흔히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지적할 때 개인 또는 집단이기주의를 말하곤 한다. 속담에 '백일 장마에도 하루만 더 왔으면 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선 남이야 어찌되든 신경 안 쓴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자신의 파멸과 불행의 시작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사가 어찌 욕심껏 내 맘대로 되겠는가. 서로 동등하게 주고받을 때 화합과 질서는 유지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속된 말들이 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 "내가 하는 것은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부도덕이다." "내 것은 내꺼, 네 것도 내꺼, 아니면 말고." 이런 농담들이 제법 설득력 있게 회자되는 현실은 차라리 추함, 그 자체다.

모든 것이 갖고 싶은 욕심의 대상일 때 그것은 지옥과도 같다. 사랑도, 사업도 심지어는 일부 가정까지도 조건만족 지향적이다가, 필요하지 않을 땐 가정해체까지 서슴지 않는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괴롭고, 미운 사람과 함께 있으려니 고통이고, 원한 만큼 가지지 못해 불만이다. 남의 몫을 넘보지 말고 인정하면 행복하다.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닌 것을 알면, 지혜와 덕이 생겨 오히려 모든 것이 풍요로워지는 법이다.

최근 부동산 및 교육정책 혼란, 한미 FTA협상, 독도 문제, 북한 미사일 발사 등의 현안에 국민들은 혼돈스러워 한다. 문제 있는 지도자를 원망하고, 잘못된 정치를 탓한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를 선출한 것도 내 자신이고, 잘못된 정치풍토가 용납 묵인되는 것도 우리의 이기심이 원인이 된 것이다. 自業自得(자업자득), 自作自受(자작자수)다.

정직하며 소신 있는 정치풍토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또한 그 사회 구성원들의 몫이다. 객관성이 결여된 자기중심적 판단과 행동은, 진실을 흐리게 하여 사회통합의 저해요인이 된다. 이기적 의식구조가 만연하면 정체성 혼란은 필연적이어서 그 집단은 방황하며 불안해지는 것이다.

'금강경' 대의 중에 '凡所有相 皆是虛妄(범소유상 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는 부처님 말씀이 있다.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허망한 것으로 보는 사람, 그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라는 말이다.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하다'고 하는 것을 굳이 본고에 맞춰 설명한다면 '모든 물질 소유는 영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허망한 것을 허망하지 않다고 잘못 보는 것은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邪見(사견)이다. 사견은 곧 貪瞋痴(탐진치)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라 할 수 있다. 사견이 없는 사람은 곧 부처님 즉, 如來(여래)라 하는 것이다.

나 이외의 어떤 것들에라도 아픔과 피해를 주며 취한 것은 진정한 이익으로 볼 수 없다. 합리적이지 못한 행위는 부메랑이 되어 반드시 업보로 되돌아오는 법이다. 장맛비에 욕심을 씻어 버리자.

그러면 지금의 어려움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장마 후의 매미 울음소리는 더욱 시원할 것이니, 물소리 바람소리에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자. 장대 빗줄기에도 젖지 않는 토란대 같은 튼실한 삶을 위하여.

지거 스님(조계종 보현의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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