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원비 없어 퇴원도 못해…" 뇌졸중 투병 오사랑 씨

병실에서 창 밖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영자(65·여·북구 산격동) 씨.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때문인지, 빗줄기가 창문을 타고 내려가면서 물기가 어린 탓인지 이 씨 눈에 보이는 풍경은 흐릿하기만 하다.

'인생은 60살부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 씨에겐 꿈같은 얘기다. 평생 건축공사 현장에서 일해 온 남편 오사랑(65) 씨가 지난 2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생계가 막막해진 탓.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지를 생각하면 암담하지만 지금은 남편 병간호가 우선이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 아침 공기가 차가웠던 지난 2월말, 자고 일어난 오 씨는 갑자기 다시 쓰러졌다. 당황한 이 씨가 남편 몸을 흔들어 봤지만 눈만 끔벅일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오른쪽 팔, 다리도 뻣뻣하게 굳어만 갔다. 병원에선 뇌졸중으로 인해 언어장애와 마비증세가 왔다고 했다.

호인(好人)이었던 오 씨. 공사현장 막일로 인생을 보내며 벌이는 넉넉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해 인기가 많았다. '사랑'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 셈. 집에선 통 말이 없었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했기에 가족에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쳐오기 전까지는 한달에 20일은 일감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많아봐야 한달에 10여일 일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씨도 남의 집 허드렛일, 식당일 등을 하며 거들었지만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오 씨가 쓰린 마음을 술로 달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

"4년 전 제가 뇌졸중으로 먼저 쓰러졌죠. 다행히 혼자 움직일 순 있지만 일을 하긴 버거운 몸이 됐어요. 남편은 혼자 속을 끓이다 주량이 부쩍 늘었습니다. 괴로웠을 테지요.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도 형편은 점점 어려워져만 가니…."

답답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술을 찾았지만 그 행동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오 씨의 몸과 정신을 좀먹어 들어갔다. 갑자기 화를 내고 했던 말을 반복하는 등 정신에 이상이 오면서 점점 의욕을 잃어갔던 것. 결국 지난해 중순 두 달 동안 입원한 채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도 했다.

현재 오 씨는 벽과 난간에 의지해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 아직 오른쪽 팔이 움직여지지 않고 말을 할 수도 없지만 혼자 용변을 가릴 수 없어 기저귀를 차야 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호전된 것. 이 씨와는 눈빛과 왼손으로 종이에 글을 적는 것으로 대화를 대신한다.

"말을 할 수 있으면 고민이라도 함께 나누련만…. 병원에선 퇴원한 뒤 재활치료를 받으러 드나드는 것이 병원비를 아낄 수 있는 길이래요. 하지만 병원비가 모자라 퇴원조차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는 처집니다."

병원비로 200여만 원을 냈지만 아직 700여만 원을 더 내야한다. 슬하에 2남 1녀를 뒀지만 자녀들 역시 부부에게 도움을 줄 형편이 못 된다. 회사부도로 직장을 잃은 두 아들 중 큰아들(38)은 폐인이 되다시피 했고 작은 아들(36)은 최근에야 한 공단에 일자리를 얻었다. 게다가 딸(40)은 7년 전부터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말이 어눌해지는 등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탓에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

오 씨 부부가 가진 것이라곤 슬레이트 지붕을 인 낡은 한옥(18평) 뿐. 오랜 세월 이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였지만 이번 비로 집안 곳곳에 비가 새 엉망이 될 정도로 엉성한 집이다.

"남편이 쓰러진 뒤 새삼 그가 제게 얼마나 소중한 이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오사랑 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요. 아무리 어려워도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았는데 이젠 어쩔 도리가 없네요. 제 힘으로 이 상황을 이겨낼 방법이 없어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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