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예계 산업화에 따라 명암 극심

엔터테인먼트업계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혁명적인 변화의 바람이 업계 곳곳에 불어닥치면서 관련 시스템과 인력구조가 급속도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CJ, SKT, KT 등 대기업과 해외의 뭉칫돈이 들어오면서 기획사의 몸집이 커지고 있다. 관련 코스닥 상장사도 무더기로 쏟아진다. 수백억 원대의 자산을 일군 연예계 출신 CEO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함 이면에는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제작비 상승, 주가 하락 등으로 피해를 입는 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눈먼 돈'에 이해관계가 얽힌 소송도 난무한다.

◇빛-투명하고 안정적 경영 가능, 종사자 처우 개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50여 개의 엔터테인먼트업체가 코스닥을 통해 우회상장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타를 내세운 매니지먼트사, 또는 드라마 외주제작사 등이 대규모의 외부 자금을 조달한 후 주식시장에 입성, 추가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단 상장된 회사들은 스타 매니지먼트, 영화·드라마 제작 등 다른 영역으로 급속하게 세를 불리고 있다. 여기에는 합병, 주식교환, 지분인수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이 과정에서 키이스트의 배용준, IHQ의 정훈탁 대표 등 수백억 원대의 재벌급 '주식부자'들도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휴종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원장은 "연예계가 '구멍가게'에서 기업으로 조직화되고 발전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면서 "예전처럼 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외주제작사의 대표 A씨도 "엔터테인먼트업체가 일반 기업처럼 기업 공개를 하게 되면서 다른 업종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들도 돈을 빌려주며 투자를 주로 하던 '채권자' 입장에서 인수와 지분투자 등 적극적인 '주주'의 입장으로 엔터테인먼트업계를 대하고 있다. SKT는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IHQ와 YBM 서울음반을 인수했고, KT는 싸이더스FNH에 280억 원을 투자하는 등 '큰손'들이 속속 이 업계에 뛰어들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의 대표 B씨는 "과거에는 개인 투자자의 돈을 빌려 기획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수익과 손실을 놓고 분쟁의 소지가 많은 편이었으나 대기업 자본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투명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예계의 실무자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 매니저와 영화사 직원 등 업계 종사자의 급여나 후생도 상대적으로 개선됐다.

B씨는 "1~2년차 매니저의 경우 대부분이 50만 원 미만의 급여를 받았는데 지금은 8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는 보장되는 것으로 안다"면서 "매니저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의 의식과 이를 바라보는 주위 시선도 달라지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고 설명했다.

한 영화사의 직원인 C씨는 "특히 영화 투자사의 경우 급여와 복지가 많이 나아졌다. 예전에는 무시됐던 4대 보험 혜택은 이제 기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연월차 휴가에 안식년까지 도입된 회사가 있다"고 말했다.

체계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효과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연예계 산업화의 장점으로 꼽힌다. 해외 네트워크와 자금을 적극 활용한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이 잇달아 시도되고 있다.

◇그늘-거품 현상에 피해자 속출, 스타 몸값 급등

올해 코스닥에서 고점 대비 주가가 가장 많이 하락한 종목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엔터테인먼트 관련 업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대장주로 군림하던 팬텀은 올해 최고 3만5천300원을 기록했지만 3천700원(이하 26일 종가 기준)으로 90% 가량 폭락했다. 뉴보텍은 2만3천800원에서 1천675원으로, 디에스피는 2만450원에서 4천50원으로 내려앉았다.

주가 하락의 피해는 주주를 비롯한 투자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업종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친다.

A씨는 "상장사는 미래가치를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엔터테인먼트업계는 매출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면서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불확실성에 이처럼 시장이 계속 실망한다면 산업화의 거품이 꺼지거나 한류가 주춤할 경우 관련 업계는 회복불가능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휴종 교수는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몇몇 기업을 중심으로 한 독과점 형태가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현상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스타를 앞세운 우회상장과 콘텐츠 제작이 쉬워지다 보니 스타들의 몸값도 급등했다. 스타를 데리고 이곳저곳 옮기며 몸값을 올리는 기획사도 있고, 스타와 매니저가 서로 다른 상장사와 전속 계약을 맺는 어이없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스타와 자본을 둘러싼 이런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법적 분쟁도 늘었다. 최근 늘고 있는 연예인 출연료 가압류, 전속계약 부존재확인 소송 등이 좋은 예다.

기획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군소회사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현상도 생겼다. B씨는 "대규모 자본을 갖춘 '그들만의 리그'가 짜이고 있는데, 그나마 그 속에 한 발이라도 걸치지 못하면 완전히 관객의 신세로 전락한다"면서 "전도유망한 회사와 연예인을 보유하고 있어도 업계에 자리잡기가 쉽지 않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어렵게 회사를 운영하더라도 스타 몸값 폭등 등에 따라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B씨는 "무리수를 둬서 스타를 영입하더라도 그 이상의 수익을 내기 어렵고, 거대 기획사의 등쌀에 신인을 키우기도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전망 및 대안-양질의 인력양성 구조 마련이 시급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앞으로도 당분간 합종연횡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견실한 구조를 만든 후 높은 가격을 받고 대기업에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회사가 적지 않고, 미래산업으로 꼽히는 이 업계에 뛰어들려는 대기업 자본도 추가로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엔터테인먼트업계가 바람직한 산업화를 이루기 위한 과제로 A씨는 "연예 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인력이 핵심이기 때문에 연출자, 작가, 매니저 등 양질의 연예계 인력을 양성할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3의 시장을 개척하고, 계량화된 비즈니스모델을 마련해야 모처럼 온 기회를 날리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의 한 대표는 "어차피 산업화는 대세"라며 "대자본 간의 전쟁에 맞서지 말고 이에 편입돼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현명한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휴종 교수는 "주가 등을 둘러싼 문제점은 시장에 맡겨 자체적으로 걸러지게 할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경쟁력이 있는 업체끼리 합하거나, 아예 다른 분야의 기업과 손을 잡아 시너지 효과를 높였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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