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구잡이' 고가·지하차도, 교통혼잡 '주범'

그동안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교통시설물로 '대접'받았던 고가도로와 지하차도.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 시설물이 교통혼잡을 가중시키는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때문에 교통수요가 많은 건물에 대한 허가를 무분별하게 남발한 뒤 이를 고가도로와 지하차도로 막는 땜질처방식 교통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큰 돈을 들여 뭐든지 만들어놓기만 하면 막힌 교통이 뚫릴 것이라는 환상을 이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대구는.

지난 1997년 대구시는 수성구 두산오거리의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동서방향 고가차도 건설을 추진했으나 인근 주민 및 수성구 의회와의 갈등으로 수년째 제자리를 맴돌다 끝내 계획 자체를 2012년 이후로 유보시켰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이 곳 주민들은 "두산오거리 동서방향은 교통상황이 아주 좋은데 그 때 대구시 말을 믿고 고가도로를 놨으면 지금 엄청난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대구시의 실책은 이어졌다. 대구시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범안로가 있는데도 불과 얼마떨어지지 않은 곳에 담티로 고가차도를 놓고, 두리봉터널을 뚫었다. 역시 이 고가도로도 주변 주민들은 흉물로 보고 있다. 아파트 진출입구가 있는 고가도로 아래의 교통상황을 악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실제 고가도로를 지나는 교통량도 많지 않아 '과연 이 고가도로를 누가 만들자고 했느냐.'는 의문을 부르고 있는 것.

최근 실시설계에 들어간 대구 동대구로 황금네거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지하차도 건설도 주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 일단 내년 초쯤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지만 인근 주민들과 수성구의회의 반발이 숙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상인~범물 4차순환도로 계획도 '불신'에 휩싸인 채 3년째 진통을 겪고 있다. 앞산을 관통하는 터널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대구의 '허파'이며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문화자원인 앞산을 파괴하면서까지 터널을 뚫었을 때 그 터널에 차가 얼마나 다니겠는가"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교통정책에 대한 명확한 잣대가 없기 때문에 매번 교통구조물 건설계획이 주민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고가도로·지하차도 등 '하드웨어'에만 매달리는 교통정책이 지·정체를 해소 못한 채 번번히 실패해오자, 주민들의 정책 불신으로 파급됐다는 것이다.

◆다른 곳은 지금?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최근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고가도로와 지하차도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오히려 이들 교통시설물이 더 이상 교통소통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데다 슬럼화 등 도시미관만 해치는 주범으로 꼽고 철거에 나서고 있는 것.

홍경구 대구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과)는 "이미 선진국들은 지하차도, 고가도로가 도심의 교통소통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며 "오히려 이러한 시멘트 구조물이 도심을 삭막하게 하고 사람의 접근을 방해하는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 교수는 또 "미국은 '용도지역지구제'라는 것을 통해 인근 도로나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에 따라 건물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며 "우리는 일단 건물을 짓고 난 뒤 도로를 생각하기 때문에 고가도로나 지하차도 등이 양산되며, 이것이 오히려 차량정체를 더 심화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서울에서는 최근 청계천 복원 이후 청계고가, 삼일고가, 서울역, 삼각지, 원남고가, 미아고가 등 많은 고가도로를 철거 중이다. 또 부산은 새로운 지하차도 건설에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

최근 부산 해운대구에 조성된 신도시인 센텀시티는 건설에만 10년이 걸렸다. 백화점, 대형할인점 등 교통수요가 한꺼번에 몰리게 돼 이 일대가 극심한 차량정체에 시달리게 될 것을 우려해 근본적인 교통정책 강구에 매달렸기 때문.

조성 이후 발생하는 최대 교통량을 감안해 중심 교차로에 지하차도 건설과 병행, 인근에 거미줄망 같은 우회도로를 만들어 대비했다.

부산시건설본부 한 관계자는 "지하차도 하나만 믿을 경우 중심 교차로는 물론 인근 도로까지 교통섬이 될 것이라는 자체 분석에 따라 지하차도와 연결되는 여러 개의 분산도로를 더 확보하는 등 10년 동안의 조성기간 동안 도시공학적 검토를 충분히 했다."고 했다.

◆이렇게 하자

교통문제 전문가들은 "도심의 교통소통을 위한다는 이유로 교통시설물을 덕지덕지 붙이는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도심에 시멘트 구조물을 없애는 등 자동차가 아닌 사람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전세계 다른 대도시들과 손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영남대 김타열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세계 대도시들의 추세가 시멘트를 없애고 인간 친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며 "최근 서울에서의 청계천 복원과 고가도로 철거사업에서 보듯 교통 소통량보다는 인간 활동을 편리하게 하는데 도심정책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진 계명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교통량을 많이 유발하는 시설물의 도심 진입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이미 교통소통에 한계를 보이는 고가도로, 지하차도 등의 시설물을 철거하는 대신 우회도로 확보, 비보호 좌회전 등의 보다 근본적인 교통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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