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박(50)씨는 많은 것을 버리지 않았다. 단지 덧없는 물질적인 욕망만을 버렸을 뿐. "모든 게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거 아니겠어요.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누구든 전원생활이 가능하죠." 넉넉한 웃음으로 화답하는 그에게선 '버림'보다 '얻음'이 더 큰 듯하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조씨의 집은 번잡함과는 단절되어 있었다. 조씨의 아담한 전원 집은 누가 봐도 '명당'. 울창한 소나무로 뒤덮인 야산을 뒷무대로 큼직한 창으로 푸른 산과 들, 드높은 하늘이 시원스럽게 트여 있다. 마치 영화 스크린에서 비추는 시골의 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380여 평의 대지를 빼곡히 채운 것은 그만의 텃밭이다. "80평 규모의 밭에 콩이며 들깨를 좀 심었죠. 하지만 제초제를 안 뿌리고 가꾸려고 하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네요." 그가 말하는 고단함도 그저 삶의 여유쯤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조씨가 이곳에 둥지를 튼 건 지난해 10월 무렵. 아는 스님 소개로 터를 잡은 조씨는 허름한 시골집을 고치고 옆에 자그마한 '차실'도 만들었다. 안동에서 30년간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평소 관심사였던 사회 복지를 공부하면서 조씨는 '가족 실버'의 매력에 빠졌다. 경북 의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지라 줄곧 전원생활에 대한 향수도 한몫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원생활을 할 만한 터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적잖은 발품도 팔았다.
조씨는 이곳에 집을 마련하는 데 모두 3천300여만 원이 들었다. 기존의 집을 보수하는 데 1천500만 원, 차실을 짓는 데 1천500만 원, 조경이나 기타 비용은 300만 원 정도 나갔다. "전원주택이라 하지만 크게 내세울 건 없죠. 기존의 집을 고치고 차실 정도만 지었으니까요. 전원생활이 좋은 것이지 집은 그리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래도 '차실'로 쓰이는 4평 규모의 황토 건물은 조씨의 자랑거리. 이웃사람들과 함께 조씨가 직접 삽을 들고 완성한 작품이다. 차실에는 책과 차(茶) 도구, 서예용품 등으로 채워져 있다. '솔바람 풍경소리'라는 차실 이름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처마 끝에 걸린 풍경 소리가 간간히 귓가를 두드린다.
시골에서의 삶이 그렇듯 조씨의 하루 일과는 무척 단순하다. 새벽 5시30분에 눈을 뜨면 뒤쪽 야산으로 강아지와 더불어 산책을 한다. 오전 9시쯤 아침을 먹고선 밭일에 매달린다. 점심 식사 뒤엔 차실에서 독서나 서예, 경전 공부 등 그만의 취미로 시간을 보낸다. 조금은 따분할 것 같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해 이렇듯 고요한 생활이 크게 어색하지 않다고 한다.
전액 공무원 연금으로 생활하는 조씨. 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롭다. "이곳에선 많은 것을 욕심 안내면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죠. 무엇보다 마음이 포근한 게 어딥니까. 도시에서 생활하다보면 사람들 사이에 관계 장애가 필연적으로 생기잖아요.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고요. 여기에서의 생활은 일단 그런 게 없으니까요."
조씨의 꿈은 생활만큼이나 소박하다. 단지 가족끼리 올망졸망 사는 것. 더 나아가 이웃 주민들과 화기애애하게 사는 것이다. "전원생활을 하려면 인근 시골 주민들과 잘 지내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우리'라는 개념이 필요하죠. 시골 정서를 익히는 것도 필수적인 것 같아요."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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