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태어나 처음으로 집을 떠나 캠프를 갔었다.
20년 전 캠프가 흔치 않던 그때는 교회에서 가는 캠프가 전부였다.
겨우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떠나는 날, 처음 가는 캠프라 무척 들떴었다.
한 조에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같이 있어서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가 최고 고참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밥도 지을 줄 아는 척, 뭐든 할 줄 아는 척 폼을 잡았다. 그 당시 내 별명이 '두목'이었던 걸 보면 나는 무척이나 용감한 척한 소녀였던 것 같다. 마지막날 밤 캠프의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들어와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인 우리 동기들은 선생님들 몰래 교실을 빠져나가 캠프파이어 하던 곳 근처에 모여 놀았다.
그냥 우리들끼리만 있어도 웃음이 나고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던 나이라 그 흔하디 흔한 '묵찌빠' 놀이를 하며 밤을 새웠다. 게임에서 지는 사람에게는 벌칙으로 캠프파이어가 끝나고 남은 잿더미에서 검댕을 묻혀 와서는 얼굴에 발라주었다. 게임이 끝날 무렵 모두의 얼굴은 '숯검댕이'가 되어 있었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캠프파이어의 불길만 보아도 아직도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의 추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해 주는 듯하다.
송영주(대구시 북구 태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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