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대구 시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페놀사태의 교훈을 벌써 잊어버렸나.'
갑상선 장애 유발물질로 알려진'퍼클로레이트'가 낙동강 수계는 물론 대구 시민들이 먹는 수돗물에서 다량 검출됐는데도 환경부와 대구시는 즉각 공개는 커녕 한 달 가까이나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아 지역민들의 반발과 함께 불신을 사고 있다.
◆20여일 동안이나 공개하지 않았다.
대구 시민 170여만 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대구 두류, 매곡 등 정수장 2곳에서 퍼클로레이트가 검출된 것은 지난 6일. 비록 미국 환경보호청 권고기준(24.5㎍/ℓ)을 초과하지는 않았으나 두류(20.5㎍/ℓ)와 매곡(16.0㎍/ℓ) 두 곳 정수장 모두에서 다량의 퍼클로레이트가 나왔다.
그러나 환경부와 대구시는 퍼클로레이트 검출사실을 시민들에게 곧장 알리지 않고 6일 낙동강 수계 시·도 및 지방환경청 등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갖고 낙동강 주요 지점 오염도 검사 및 배출원 추적에만 매달렸다. 때문에 6일 이후 28일까지 두류정수장에서는 12차례, 매곡정수장에서는 11차례에 걸쳐 퍼클로레이트가 계속 나왔고, 시민들은 이 사실을 모른채 수돗물을 계속 마실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두류, 매곡 정수장에서 생산되는 수돗물을 책임지고 있는 대구시 상수도본부는 분말활성탄 주입 및 활성탄 흡착지 역세척 주기 단축 등 정수처리와 안동, 임하 댐의 방류량을 늘리는 등 소극적 대책에만 치중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시 상수도본부와 환경녹지국은 환경부와 퍼클로레이트 대책회의를 가지면서도 대구시장에게도 지난 20일에야 검출 사실을 보고했다.
이에 대해 대구 상수도본부 한 관계자는 "수돗물에서 퍼클로레이트가 검출됐지만 미국 환경보호청 권고기준에 미달된데다 수돗물에 대해 시민들이 지나치게 불안감을 가질 것을 우려, 검출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대구시 측은 "이번 퍼클로레이트 검출사안은 시·도가 아닌 환경부에서 전체적인 대책을 마련키로 한 때문에 시가 시민들에게 검출 사실을 알리기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특히 정수(淨水)된 수돗물의 검출 농도가 원수(原水)의 퍼클로레이트 검출 농도보다 오히려 더 높은 현상도 나타나 정수과정에서 제대로 정수되지 않았는지 여부, 정수과정에서 퍼클로레이트가 부산물로 생성되는지 등 정수과정 등에 대한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민 건강은 누가 책임지나."
수돗물에서 미량 유해 물질인 퍼클로레이트가 검출됐는데도 환경부와 대구시가 20여일 동안이나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이 퍼클로레이트가 검출된 수돗물을 마시게 된데 대해 시민과 환경단체들은 "시민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부산시와 부산대 등 학계·시민단체들이 지난 달 말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 구미하수처리장 방류수(1천828㎍/ℓ), 대구 강정취수장(59.7㎍/ℓ)에서 퍼클로레이트가 검출됨에 따라 정부 차원의 조사 및 대책 마련을 요구했는데도 환경부는 퍼클로레이트 검출을 직접 확인하고서도 20여 일이나 지난 뒤에서야 이를 공개, 뒤늦은 대응이란 비난을 사고 있다.
환경부는 28일 퍼클로레이트 검출 사실이 일부에서 알려지고난 뒤에서야 이를 공개했고, 환경부의 발표소식을 들은 대구시도 뒤늦게 이를 알리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였다.
시민 이상호(44) 씨는 "유해물질을 발견해 놓고도 이를 쉬쉬하다 20일이 넘어서야 수돗물에서 '인체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소량의 유해 물질이 발견했다.'고 밝히는 대구시는 상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아무 것도 모르고 유해물질이 섞인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의 건강은 누가 책임을 질거냐"고 따졌다.
◆ 선진국에선 화학물질 검출, 즉시 공개.
류승원 영남자연생태보존회 회장은 "지난 번 금호강과 신천의 획기적 수질개선으로 유엔 환경상을 수상했을 때는 발 빠르게 시민들에게 알리던 대구시의 행태와 이번 퍼클로레이트 대처를 보노라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게다가 2년전 1,4-다이옥산 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먹는 물 수질기준도 없고, 권고치보다 적게 나왔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시의 수질정책에 불신만 쌓인다."고 지적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문창식 운영위원장도 "15년전 낙동강 페놀사태, 2년전 1,4-다이옥산 파동을 경험했던 대구시라면 당연히 검출됐을 당시, 시민들에게 알려 조심시키고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며 "오존경보제처럼 수질환경에도 오염물질에 대한 대중공지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대 추광호 교수(환경공학과)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인체에 유해하건 무해하건, 화학물질이 검출되면 즉시 공개한뒤 국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대책 마련에 나선다."며 "우리는 항상 눈치만 보다 뒤늦게 발표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민들의 행정불신만 조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환경부는 28일 퍼클로레이트는 호흡기, 피부 등을 자극하고 과다노출시 갑상선 장애를 유발할 수 있으나 발암물질로는 분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퍼클로레이트의 위해성에 대한 국내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로서 먹는물 수질기준, 배출허용기준 등 각종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고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유독물, 관찰물질 등으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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