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일본은행 총재의 자성

8월이 되면 떠오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광복절'일 것이다. 올해로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벌써 61년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일본은 우리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처사를 많이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 정신대에 대한 보상기피, 최근에는 독도영유권 주장 등 많은 문제로 우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필자가 일본에서 근무를 할 때 우연히 접했던 일본은행의 하야미 마사루(速水 優·1998~2003년 재임) 총재가 쓴 회고담이랄까 자성론이다. 하야미 총재는 유럽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점을 회고하며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을 기술하였는데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독일과 일본이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에 그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변 국가들에 대해 취한 태도가 서로 상당히 다르다. 독일은 지금도 히틀러정권에 가담한 사람은 발견되는 대로 재판에 회부하여 처벌함은 물론 전쟁에 대하여 사죄하고 주변국들로부터 용서를 구하였다. 또한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지금도 숨김없이 후세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종교나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지를 못했다.'고 회고하면서 자국의 반성을 일본사람답게 완곡하게 촉구하였다.

일본에 이렇게 양심적인 지식층이 소수나마 존재한다는 것은 그래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최근에 당시의 일왕 히로히토가 전범들의 위패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이후 신사에 참배하던 것을 중단했다는 기록이 뒤늦게나마 발견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정치인들이나 극우 보수진영의 사람들은 그렇지를 못한 것 같다. 현재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고 나아가서는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교과서를 제작하고 교재로 이용하는 것을 허용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과는 너무나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독도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본은 1996년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동해쪽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을 독도로 취하여 울릉도와 독도사이의 중간선을 경제수역의 경계선으로 제안하였다. 또한 지난 해 3월에는 일본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면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물론 일본이 이처럼 외교 분쟁을 일으키는 것에는 경제적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일본은 자국영토의 10배가 넘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해 막대한 어업자원과 광물자원을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 나라가 주변의 여건을 자국의 이익에 맞게 최대한 이용하려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조가 통하는 수준에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패전이후 내부의 노력과 외부의 지원을 힘입어 이제 국내 총생산액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경제력을 토대로 국제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즉 세계경기에 일본이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고 엔화가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거론되는 엔화의 국제화가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거래 상대국으로부터 정치적·도덕적 신뢰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일본은 알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아시아에서도 유럽과 같은 지역경제통합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을 감안하더라도 일본은 하루 빨리 자국중심의 폐쇄적인 자세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독일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주변국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동서독의 통일을 이루고 나아가서는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고 있는 것에서 일본은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정신적으로 보다 성숙해져 주변국들의 발전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안세일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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