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망궃다 할지 모르겠지만 불쑥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것인가. 어떻게 이별을 해야 할까. 저만큼 훌쩍 밀쳐둔 숙제가 찝찝하게 머리 한 귀퉁이를 떠나지 않는다.
국내 문인 101명이 미리 쓴 가상 유언장을 묶은 책이 출간됐다.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제목부터가 마음을 끈다.
소아마비 장애인인 한 소설가의 유언은 애틋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아내와 꼭 다시 만나고 싶다면서 "그때는 장애없는 평범한 남편이 되어 아내를 한 번 번쩍 업어주고 싶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자녀들에게 "아무리 비싼 빌딩도 내 몸속에 있는 조그만 암 덩어리보다 가치가 없더라"면서 하루하루 축복같이 즐겁게 살다 오라는 부탁을 남겼다. 어떤 수필가는 "세상에 두 번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다가 떠나오. 어머님으로부터 태어나 반평생을 살고,당신을 만나 반평생 동안 복락을 누렸소"라고 썼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한 원로 소설가는 자녀들에게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된다"며 애교어린 소유욕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 의사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도 소설처럼 아름답고 슬펐다. 십년 전, 어떤 남자가 치명적인 암, 그것도 말기암에 걸렸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없었다며 같이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얼마 후 입원한 남자는 아내 앞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얼굴을 보이지 않게끔 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났다. 얼마뒤 그의 부인이 찾아왔다. 49재가 끝나던 날, 최고급 승용차 한 대와 편지 한 통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남편의 체취가 묻어나는 편지에는 먼저 떠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절절한 당부의 글이 들어 있었다. "이 차를 타고 세상에서 좋은 구경 많이 하다가 훗날 다시 만나 재미난 얘기 들려달라"는.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글인만큼 어떤 꾸밈도,위선도 없는 것이 유언장 아닐까. 미리 써둔다면 훌륭한 나침반 역할도 할 것 같다. 72세에 작고한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 선생은 40대에 유서를 써두었다. 선생은 어느 글에서 "어쩌다 캐비닛 문을 열다 흰 봉투를 발견하면 아차,내가 뭘 그리 악착스럽게 살고 있는가 깨닫게돼 정신 수양에 여간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오늘 우리 앞에 하얀 종이 한 장이 놓여진다면, 뭐라고 써야 할꺼나.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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